“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 도발적 질문의 진짜 내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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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

지난주 깡깡이예술마을을 비롯해 부산 영도구 여러 곳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깡깡이 아지매’를 모델로 한 벽화 옆, 깡깡이생활문화센터 벽화 위에 걸린 ‘도발적인 문구’의 현수막은 논란을 불렀다. 실제로 벽화를 지운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주민들의 항의에 일부 현수막은 철거됐다.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무례한 일이라는 반발, 작업을 한 작가나 기획자에게 사전에 연락은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도문화도시센터 ‘프로젝트 영도’
공론장 진행 전 현수막 퍼포먼스
실제 철거 시도로 오해한 항의도
벽화 제작 땐 무례함 없었나 질문
공공미술 공공성 찾기 위한 토론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는 영도문화도시센터가 기획한 ‘프로젝트 영도’의 공론장 사전 퍼포먼스이다. 공공미술에 관해 토론하는 공론장을 진행하기에 앞서 참여 작가들의 선언과 질문이 담긴 공공미술 선언문을 7개 장소에 현수막 형태로 내걸었다. SNS를 달군 퍼포먼스로 19일 영도구 봉래동 블루포트2021에서 열린 공론장에는 각지에서 온 예술가, 기획자, 비평가가 참여했다.

공론장에 앞서 작가들의 공공미술 선언문을 담은 아트북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 북토크가 열렸다. 아트북은 프로젝트 영도팀 작가들이 영도를 직접 돌아보고, 여러 분야 연구자를 초청해 공공미술을 공부하고 논의한 결과물이다. 작가들은 공공기관의 직무 유기에 가담하는 도구로 전락한 공공미술, 도시에 시각적 소음이나 마찰을 증폭시키는 공공미술 등을 지적했다. 공무원·시행사 등으로 구성된 공공미술 대표단의 의견이 반영된 시안을 그리는 ‘을’로 전락한 작가의 현실도 언급됐다.

북토크에서 이명훈 예술공간 돈키호테 기획연구팀장은 “시간적 제약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조급하게 추진되는 과정이라든지, 주민 참여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며 “문화뉴딜 사업으로 진행된 우리동네 미술 프로젝트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업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영도 팀이 ‘벽화’를 앞세운 이유는 벽화가 공공미술 사업의 대표적 테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벽화는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테마파크’처럼 만들어 버린다. 공론장에 참여한 한 시민도 그런 점을 지적했다. 안소현 기획자는 “다른 작가의 작품 위에 무례하고 거칠게 현수막을 걸었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벽화가 그려지기 전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공간을 벽화를 덮을 때 그건 왜 무례하다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월식 작가는 프로젝트 영도 팀의 이번 퍼포먼스에 대해 “자신만의 윤리성에 갇힌 공공미술에 대한 질문으로 봤다”며 “일방적이지 않았는지, 더디지만 절차를 갖췄는지 등을 질문하며 (공론화를 통해) 공공함에 다가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공공미술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건축 등 다른 분야의 공공성에 대한 생각도 환기시키기를 희망했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서평주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는 ‘조형물은 만들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시작했다”며 “벽화 등 조형물이 도시를 10년 20년 점유하는 형식이 아니라, 잠시 걸고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언제든지 공공의 영역으로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다”고 했다.

고윤정 영도문화도시센터 센터장은 “누굴 비판하기 위한 자리는 아니며,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오해는 센터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예술가의 윤리적 기준, 중간조직의 프로세스, 공공미술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다른 도시에서도 이런 논의를 이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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