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난 뒤에도 살아남을 동네 목욕탕 얼마나 될까?
“동네 사람 얼굴 맞대고 몸 담그는 게 낙이었는데, 이젠 코로나 무서워서 모이기도 어렵네요.”
최 모(74·부산 중구 영주동) 씨는 코로나19 이전 집 근처 목욕탕을 주기적으로 찾았다. 목욕탕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회포를 푸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웃들과의 만남이 막혔다. 단골 목욕탕이 문을 닫고 장기휴업에 들어간 까닭이다. 최 씨는 “코로나19 이후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가는 게 겁이 난다”며 “마음먹고 찾아가려 해도 폐업하거나 휴업한 곳이 많다. 이웃 주민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정을 나누던 목욕탕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마을사랑방’이 ‘기피공간’ 전락
장기 휴업 업소만 50여 곳 달해
온천장 족욕탕 10년 만에 폐쇄
중구 구립 목욕탕 운영자 없어
“코로나 끝나도 회복 어려울 듯”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던 동네 목욕탕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목욕업소의 집단감염 사례가 잦아지면서 시민들에게 목욕탕이 썩 안전하지는 않은 공간으로 인식된 것이다. 목욕업소의 대형화 추세에 코로나19까지 더해지며 목욕업 쇠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부산지역 대중목욕탕 수는 코로나19 이후 더 빠르게 감소하면서 지난해 말에는 760곳만 남았다. 해마다 20곳 안팎 수준으로 줄어들던 목욕탕 수는 코로나19가 본격화된 2020년 이후엔 감소 폭이 커졌다. 이들 개업 업소 가운데 현재 장기휴업에 들어간 목욕탕 수만 해도 50여 곳에 이른다. 이에 따라 올해 말 부산지역 목욕탕 수는 700곳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로 집단감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게 목욕탕 폐업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마스크 착용이 어렵고 폐쇄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업종 특성상 감염을 방지하기 어렵다는 걱정이 커진 데다 영업시간 제한 등도 업계 위축을 가속시켰다.
실내뿐 아니라 실외 목욕 공간도 문을 닫기는 마찬가지다. 2009년 문을 연 동래구 온천장의 족욕탕 2곳 중 1곳도 코로나19로 10년 만에 폐쇄됐다. 다른 1곳도 현재 운영이 잠정 중단된 상태로 재개장 시기는 불투명하다. 동래구청 관계자는 “실외공간이라 해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현실적으로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10여 년간 주민들의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던 족욕탕이 사라지면서 주민들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인근 주민 이 모(45) 씨는 “온천장 족욕탕은 갈 곳이 많지 않은 어르신들뿐 아니라 등산객들도 많이 찾던 동네 명물이었다”며 “주민들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이 코로나19로 갑자기 사라져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지속적인 확산세로 목욕탕의 정상영업이 불투명해지면서 구립 목욕탕조차 운영자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구 구립 목욕탕인 ‘대청행복탕’은 주민복지를 위해 지난해 9월 준공됐지만 최근까지 운영자가 나서지 않아 개장이 미뤄지고 있다. 중구청은 운영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연간 사용료를 대폭 줄여 5차례 위탁운영자 모집공고를 냈지만 입찰에 나선 운영자는 없었다.
중구청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있어도 막상 운영하려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라며 “운영자가 정해질 때까지 개장은 어렵다”고 말했다.
목욕업계는 ‘기피 공간’으로 인식된 목욕탕이 코로나19 이후에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목욕업중앙회 부산시지회 박재기 사무국장은 “코로나19로 ‘목욕탕은 감염 공간’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생겨,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이전과 같은 이용률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목욕탕은 운영하면 연료비가 많이 들어 지금과 같이 수요가 적을 땐 휴업이나 폐업이 낫다”고 말했다. 이어 “목욕탕 대형화 추세에 코로나19까지 이중고가 겹친 상황 속에서 앞으로 동네 목욕탕은 '복지 공간' 개념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