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사적인 유권자와 공적인 주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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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원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대선이 코앞인데, 이번 대선 기간에도 어김없이 나라와 국민 전체가 찢긴 비닐하우스처럼 대선 바람에 크게 들썩이고 있다. 주요 후보들 간의 일방적인 주장과 거친 비난만 황사바람처럼 난무하고, 그 해로운 먼지 속에서 진실과 사실이 무엇인지 갈수록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언론은 이번 대선에서도 여전히 균형과 중립 보도라는 형식적인 틀에 스스로 갇혀, 진실과 사실 규명에 의지가 없고 무기력하다. 심지어 몇몇 언론은 자신들이 만들거나 지지하는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편파 보도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언론이 정론직필을 버리고 사담곡필을 추구한 지 오래된 만큼, 국민들도 이제 이들 언론의 이런 작태를 또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더 이상 개선을 촉구하지도 않고 있다.

극단적으로 갈등하고 혐오하는 정치
비난과 일방적 주장만 난무하는 대선
대선이 국가를 해치는 일로 전락해

분열되고 찢긴 공동체 미래 어두워
국가공동체, 사익과 공익 조화 이뤄야
공익·공동선 실현하려는 후보 찾아야



이렇게 진실과 사실이 사라진 대선판에서 공허하게 휘날리는 건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일방적인 주장, 양 진영으로 찢겨 극단적으로 갈등하고 혐오하는 정치뿐이다. 정치의 꽃인 대선이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해하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제정신을 가진 국민들밖에 없다. 그런데 선거철에 제정신을 지닌 국민들은 단순한 유권자가 아니다. 선거철일수록 제정신을 가진 국민들은 유권자뿐 아니라 슬기로운 주권자도 되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는 이기적인 유권자이기 쉽다. 이기적인 유권자는 선거에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사적 이익을 최우선시한다. 예컨대, 이기적인 유권자는 내가 어떤 후보를 지지하면 그 후보가 나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를 가장 중시한다. 이익은 물질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일 수도 있다. 즉, 이기적인 유권자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경제적 이익을 주는지를 항상 계산하고, 자신과 같은 이념을 지닌 후보와 정당이 승리하면 자기도 기뻐하는 정체성의 일체감을 통해 정신적인 쾌감과 만족감을 추구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이 이기적인 유권자가 되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다.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적 이익을 채워주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국민들에게 좋은 일이고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적인 유권자가 다는 아니다. 제정신을 가진 성숙한 국민은 개인의 사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국민들과 함께 공동체의 공익과 공동선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정치 공동체의 최고 단위인 국가는 국민들의 사익 추구만으로는 잘 유지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국민 개개인들이 자신의 사익만을 추구하는 공동체는 개체화하고 분열하여 결국에는 붕괴한다. 그리고 분열하고 붕괴한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국민은 없다. 가족들이 각자 자기만의 사익을 우선시하면서 서로를 사랑으로 위하고 챙기지 않는다면 그 가족 공동체는 제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마찬가지다. 국가 공동체도 국민들이 각자의 사익만을 추구하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공익과 공동선을 무시한다면, 그 국가 공동체는 온전히 유지되기 어렵다. 좋은 국가 공동체는 국민 각자의 사익과 공동체의 공익이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이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서로 합의해서 만든 좋은 가치인 공동선을 함께 추구하는 공동체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선 정국을 맞아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는 어떤 상황인가? 개인의 사익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공익과 공동선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기적인 개인과 배타적인 집단 간의 사익 추구 경쟁,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갈등과 혐오만이 난무할 뿐이다. 이번 대선 그 어디에도 국가 공동체의 공익과 공동선을 무겁게 고민하고 추구하는 정치 행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작금의 대한민국 공동체는 자유와 평등, 공정과 정의, 평화와 행복이라는 공익과 공동선을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이들 공익과 공동선을 제대로 고민하고 토론하고 정책으로 제시하는 후보와 정당과 국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념과 진영의 검게 썩은 우물에 갇혀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사익만을 추구하면서 대한민국 공동체의 공익과 공동선은 모른 채 경시하고 있다. 이런 분열되고 찢긴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는 밝을 수 없고, 이런 어두운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 갈등과 증오, 혐오와 복수로는 나도 공동체도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이제는 투표 직전까지 내 사익은 물론 공동체의 공익과 공동선을 조금이라도 더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이기적인 유권자도 좋지만, 공익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현명하고 슬기로운 주권자가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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