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스마트 지팡이
나이 드신 부모님의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하다면 자식 처지에선 자연스레 지팡이가 떠오른다. 예전에 한 번 “지팡이를 하나 사다 드려야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로부터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자식이 부모에게 지팡이를 사드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이유를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모님에게 지팡이를 선물하는 것은 자식이 앞으로 부모님을 공식적인 노인으로 여기겠다는 표시라고 여겨 꺼리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 준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자식이 대놓고 부모님을 늙었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공자께서 부모의 연세에 대해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두렵다(一則以喜, 一則以懼)”라고 언급한 맥락과도 통하지 싶다.
사실 지팡이는 본인이 직접 만들어 짚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르신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주변에서 선물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전에는 나이가 60, 70, 80세를 넘어가면 마을이나 고을, 나라에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나라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신하가 70세가 넘어 사임을 청하였을 때 임금이 사직을 만류하는 표시로 팔걸이가 있는 의자와 지팡이를 하사했다는 기록도 많이 전한다. 바로 ‘궤장(궤杖)’이다. 궤장을 하사할 때는 반드시 잔치도 함께 베풀어 그 공로를 기렸다. 그래서 지팡이는 노인의 풍부한 경륜과 지혜를 상징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지팡이에 담긴 이런 의미를 아는 이도 드물고, 굳이 이를 따지는 세상도 아니다. 지팡이에 담긴 의미는 모두 사라지고, 단지 ‘지팡이=노인’이라는 이미지만 남았다. 정부에서도 1992년부터 노인의 날에 전국의 100세를 맞은 어르신들에게 대통령 명의의 청려장을 선물로 주고 있다.
어쨌든 지팡이는 이제 상징적 의미를 떠나 실생활에서 어르신들의 이동을 돕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대표적인 실버 용품으로서 지팡이의 변신도 눈부시다. 온갖 첨단 소재를 이용한 다양한 지팡이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엔 부산의 한 벤처기업이 위치정보 전송과 SOS 알림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 지팡이’까지 내놨다. 건강보험공단의 복지용구 선정엔 탈락했다지만, 실버 용품의 첨단화는 큰 흐름인 만큼 변화 가능성도 충분하다. 첨단 기술을 장착한 지팡이가 어르신의 보행을 얼마나 편리하게 바꿀지 궁금하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