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송 나온 우크라 외무장관 “안전 보장 약속 지켜라”
28년 전 미국, 영국, 러시아 등 강대국을 믿고 핵을 포기하는 대신 안전 보장 약속을 받아냈던 우크라이나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맨몸’으로 총탄에 맞서는 신세가 됐다. 이란과 북한을 위시해 핵무장을 하려는 국가들에 대해 “안보는 역시 남의 나라를 믿고 맡길 수 없다”는 부정적 학습 효과만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년 전 ‘핵 포기’ 조건 언급
미국 향해 더 강력한 제재 요구
크림반도 병합 때도 ‘경고’ 그쳐
북한 등 핵 보유 ‘학습 효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1994년 핵포기 결정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면서 미국에 당시 약속했던 안전 보장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워싱턴타임스 등에 따르면 쿨레바 장관은 이날 미국 폭스방송에 출연해 당시 우크라이나가 핵포기 결정이 실수였는지 묻는 말에 이같이 주장했다. 질문을 받자 그는 “과거를 짚어 보고 싶지는 않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곧이어 “만약 당시 미국이 러시아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빼앗으려고 공조하지 않았더라면 더 현명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우회해 답변했다. 쿨레바 장관은 같은날 CNN방송에서도 “1994년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 규모의 핵무기를 포기했다. 우리는 특히 미국이 내놨던 안전 보장을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압박했다. 그러면서 서방이 내놓은 대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러시아의 구둣발이 우크라이나 땅에서 철수하기 전까지는 어떤 제재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더 강력한 제재를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12월 7일 미국, 영국, 러시아 등과 ‘부다페스트 각서’를 체결하고 당시 세계 3위 규모였던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영토의 안전성과 독립적 주권을 보장받기로 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1800여 개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모두 러시아로 반출해 폐기했고 1996년 6월에는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겨 비핵화를 완료했다. 문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행을 보증한 국제적 합의지만 28년이 지난 현재 사실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당시 정식 조약(Treaty)이나 협정(Agreement)이 아닌 각서(Memorandom)를 체결한 것이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강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 주간 포쿠스는 “결정적으로 상황이 변하면 각서 내용을 다시 협의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어 (미국과 러시아 등이)빠져나갈 수 있는 명분까지 만들어 줬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8년에도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장이 “핵무장 포기는 우리의 역사적 실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의 독립을 승인하고 자국 군대를 보냈을 때부터 각서가 무의미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1일 자국을 떠나는 외국 대사관들을 비난했다. 그는 “(대사관은)우크라이나에 남아야 한다. 그들 기업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고 우크라이나 군대가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각국 대사관의 ‘엑소더스’는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들을 폴란드로 이동시키고 있고 독일과 영국, 호주 등도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업무를 중단하고 출국하라고 명령했다.
전문가들은 '학습 효과'를 언급하며,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 과연 나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가 불분명해지고 핵무기 보유 의지를 더 확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