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공약이 현수막에… 대선 후보님들, 지방 선거 출마하셨습니까?
‘지하철 초읍선 신설.’ ‘장산 구립공원 국가생태탐방로 조성.’
28일 부산시민공원과 해운대 장산 입구에 각각 내걸린 대선후보들의 선거 현수막이다. 시대정신이나 정치철학 같은 슬로건이 아닌 지역 맞춤형 ‘작은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풍경이다.
지역 맞춤형 ‘작은 공약’ 전면에
초박빙 구도에 ‘디테일’로 접근
지방 선거 영향력 키우기용 포석
중구난방식 공약 역효과 줄 수도
주요 후보 간 초박빙 구도, 대선 후 지방선거 실시 등이 맞물리며 나타난 3·9 대선의 새로운 모습이다.
지난달 15일 공식 선거운동기간 시작 후 여야 부산선대위는 구·군별 대선 공약 홍보에 열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선대위는 지난달 21일 부산 구·군 공약을 담은 ‘우리 동네 공약 시리즈’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부산뿐 아니라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별 공약이 담겼다. 선대위 측은 “대선에서 기초지자체 공약까지 마련한 것은 최초”라고 자부했다.
국민의힘 부산선대위도 부산 각 구·군의 생활밀착형 공약들이 담긴 대선 공약집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며 집중 관리 중이다. 후보가 직접 언급한 굵직한 공약 외에도 동네 주민의 숙원사업들이 담겼다.
이 같은 모습은 5년 전 대선과는 판이하다. 당시에는 ‘적폐 청산’ ‘보수개혁’ 등의 이념과 광역단위의 대규모 공약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전문가들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간의 역대급 초박빙 구도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여야 모두 ‘디테일’의 차이가 승부를 가를 거라고 전망한다는 것이다. 부산만 해도 대선 레이스 초기 2030부산세계박람회, 가덕신공항 건설 등 이미 나온 공약만 내세워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부산일보> 대선보도 자문단인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차재권 교수는 “이재명 후보가 구·군마다 6~7개씩 공약을 내놓은 것이나 윤석열 후보의 ‘쇼츠(짧은) 공약’ 등이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면서 “작은 단위의 표를 긁어모아 이겨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생활밀착형 공약 경쟁을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시대적 특성이 투영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개 10년마다 정권교체가 이뤄진다고 볼 때, 이번 대선은 현 정권에 대한 중간 선거의 성격이 짙어 이념 등의 대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5년 전 대선은 탄핵 정국까지 겹쳐 정권교체 구도가 뜰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부산 정치권 관계자는 “윤 후보 측의 정권교체 구도를 피해 이 후보가 실용적인 공약 경쟁을 띄우는 측면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상 처음으로 대선 직후 지선이 치러지는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지선 주자 모두 자신의 동네 공약을 대선에 관철시키는 간접 유세를 펼쳐 영향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작은 공약 위주의 대선이 오히려 역효과를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로드맵 없이 중구난방식으로 많은 공약을 내세워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훈 기자 lee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