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궁원에서 만난 싱가포르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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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원 버드파크의 앵무새들이 손바닥에 앉아 재롱을 떨고 있다.

국사, 석굴암, 첨성대. 경북 경주를 상징하는 유적들이다. 이런 명소 말고 경주에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초봄인 3월을 맞아 가족끼리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색 여행지를 소개한다. 새 전문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이뤄져 있는 경주 동궁원이다.

‘주롱새공원’처럼… 아이 손바닥에서 지저귀는 앵무
경주버드파크

자동차 창문을 열고 선선한 봄바람을 즐기며 경주 보문단지의 동궁원으로 달려간다.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차가 세워져 있다. 동궁원으로 입장하는 관람객은 대부분 연인이나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다. 그들의 밝은 표정에서 가까이 다가온 봄이 엿보인다.

신라 시대의 동궁과 월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식물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옛 안압지였던 동궁과 월지에 조상들이 화초는 물론 진귀하고 기이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기록을 배경으로 삼아 2013년 보문단지에 동궁원이 탄생했다. 동궁식물원과 새 전문 동물원인 경주버드파크로 이뤄진 곳이다. 원래 농업 시험포장, 화훼재배 용도로 사용되던 곳을 개조한 것이다.

동궁원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경주버드파크다. 다양한 새를 살펴보거나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시설이다. 새 외에도 여러 가지 동물을 구경할 수 있다. 실내에 들어가자마자 시끄러운 새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얀색으로 칠한 초대형 새장이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다양한 뱀과 거북이 잠을 자고 있는 시설을 지나면 수생플라이트장이 나타난다. 시끄러운 새 소리는 이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태양황금앵무, 흰올빼미 등이 살고 있는 곳이다. 어린이 두 명이 태양황금앵무 두 마리를 손바닥에 앉힌 채 모이를 먹이고 있다. 새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손바닥을 쪼는 일 없이 얌전하게 먹이만 골라 먹는다.

새로운 관람객이 들어오자 새들은 더욱 소란스러워진다. 먹이를 달라면서 주변을 맴돌며 소리를 지른다. 사람의 머리에 앉은 새가 있는가 하면 바닥에 앉아 사람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새도 있다. 수생플라이트장에서 새들에게 먹이를 주려면 기프트샵에서 사와야 한다.

다른 새장에서는 화려한 색깔의 깃털로 장식한 청금강앵무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새들과 교감할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인지, 이곳에서는 직원이 관람객들을 조심스럽게 안내한다. 청금강앵무에게는 먹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부리가 너무 날카로워 다칠 염려가 큰 모양이다. 오후 1시, 3시에는 청금강앵무인 나초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새장 주변의 다른 시설에서는 알다브라 육지거북, 늑대거북, 알락꼬리 여우원숭이, 타조, 공작은 물론 철갑상어, 비단잉어 등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바다 생물을 관람할 수 있다. 오후 1시 40분, 3시 40분에는 알다브라 육지거북과 교감하거나 함께 산책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번에는 제2관으로 건너갈 차례다. 이곳에는 사랑앵무장이 있다. 잉꼬앵무새들과 즐겁게 대화하면서 먹이를 줄 수 있는 곳이다. 이미 새장 안에서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사람들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합창을 하고 있다.

사랑앵무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여러 마리의 잉꼬앵무새가 바로 날아온다. 나뭇가지나 바닥에 앉아 눈치를 보는 새들도 있다. 일부 앵무새는 머리에 앉아 재롱을 핀다. 손바닥을 펼치자 새 여러 마리가 순식간에 날아와 앉아 먹이를 달라는 듯 짹짹거린다. 관람객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틈을 타 밖으로 ‘탈출’한 새들도 있다. 직원들은 새를 잡으러 다니느라 숨을 헐떡거린다.


야자수부터 파파야까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옮긴 듯
동궁식물원

경주버드파크에서 나와 동궁식물원으로 향한다. 식물원 3~4관인 덩굴식물정원과 숨바꼭질정원이 먼저 나타난다. 식물원 본관인 1관과 2관은 바로 인근에 붙어 있다. 버드파크가 새들과 교감하면서 신나는 체험을 하는 공간이라면 식물원은 마치 열대 지역에 간 것처럼 더운 기후에서 화려한 꽃과 다양한 식물 사이를 걸으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야자원, 관엽원, 화목원, 수생원, 열대과원으로 이뤄진 동궁식물원에는 뷰티아 야자, 카나리 야자, 보리수, 미인수, 바오밥, 봉황목, 푸르메리아, 오렌지 자스민, 사계목서, 올리브, 커피나무, 파파야, 시체꽃, 파리지옥, 네펜데스 등 식물자원 400여 종 5500본이 자라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동궁식물원 1관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2관 입구를 통해 입장해야 한다. 여러 식물 중에서 분홍색 꽃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인상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꽃기린이다. 바깥에서는 아직 나무에 새순조차 올라오지 않은 상황인데 실내에서는 봄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는 꽃을 볼 수 있다는 게 반가울 뿐이다.

꽃기린을 지나면 코코넛 야자, 빈낭 야자, 살락야자 등 다양한 야자수가 넝쿨과 여울려 작은 숲 터널을 이룬 야자수 힐링 정원이 나타난다. 싱가포르의 유명한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식물원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여러 가지 꽃이 피어 있는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꽃 축제 정원이다. 붉은 원종고무나무, 순버기, 원종안스리움 등 열대 식물과 특이한 꽃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공간이다.

꽃 뒤로는 아주 짙은 초록색 잎이 달린 열대성 나무 여러 그루가 보인다. 달콤한 향이 정말 아름다워 ‘천사의 열매’라고도 불리는 파파야다. 나뭇잎 사이를 가만히 쳐다보니 곳곳에 파란 열매가 여러 개 달려 있다. 물론 따먹을 수는 없다. 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열대 지방에서 채집한 열매와 맛을 비교할 수는 없으리라.

동궁식물원의 하이라이트는 1관이다. 싱가포르의 유명한 식물원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공간이다. 물론 규모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지만 싱가포르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1관 입구에서 달콤한 향기가 퍼져 나온다. 사람들이 한 식물의 잎에 코를 가져다댄다. 향기가 거기에서 흐르는 모양이다. 서두르느라 아쉽게도 식물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렇게 큰 실수가 있을 수 없다.

동궁식물원은 그야말로 열대 지방의 이국적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치 해외 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정글에 혼자 내버려진 느낌이다. 1관을 가장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2층에 설치된 난간을 따라 도는 것이다. 1관은 2관보다 훨씬 덥다. 점퍼나 코트를 입고 있다면 금세 벗어야 한다. 사진을 찍느라 옷을 벗어야 하는 걸 까먹고 있었더니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1관과 2관 사이 연결 통로 휴게실에 잠시 앉는다. 창 밖에서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며 올라오고 있다. 지금은 건물 내부가 여름이지만 잠시 후면 바깥쪽에도 무더위가 찾아오리라는 생각에 ‘세월은 화살’이라는 표현이 실감난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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