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전쟁은 늘, 내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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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전쟁의 이유는 다양해서, 진짜 이유를 찾아내는 일은 늘 간단하지 않다. 한 국가는 같은 민족임에도 이념 문제로 내전을 겪기도 하고, 이웃 국가 혹은 적대 민족과의 갈등으로 전면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전쟁이 커져서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하는 일도 다반사이고, 반대로 정부군이 소수의 테러리스트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전쟁의 양상은 달라도 전쟁의 명분은 대동소이하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상대 탓이라고 말한다. ‘적’이 “나의 안보를 위협해서”라든가 ‘상대’가 “우리를 침략할 의사를 내보여서”, 혹은 ‘침략자’로부터 ‘국가의 재산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덧붙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도 자체 명분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명분 중 일부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러시아, 안보 위협 이유 내세웠지만
침공 위한 자의적 명분에 불과해

침략 정당화하는 논리는 늘 공허
상대 잘못 있더라도 전쟁은 안 돼
자신에게 원인 있다는 것 인정해야



문제는 그 어떤 전쟁도 명분이 없었던 적은 없으며, 적의 잘못을 지적하며 출발하지 않은 전쟁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질문은 비록 적의 잘못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 전쟁을 반드시 치러야 했다는 자문일 것이다. 지금, 러시아에게 묻고 싶은 말도 이것이다. 러시아의 주장대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되고 서방의 패권주의가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과연 한 국가가 전쟁을 시작할 진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이성적인 답변은 아마도 “그래서는 안 된다”로 귀착되어야 하겠지만, 인류 역사는 이러한 대답과는 관련이 없이 전쟁을 용인했다. 심지어 정복전쟁이 심하게 찬양되기도 할 정도로, 전쟁의 명분에는 일관된 기준이 없었다. 칭기즈칸의 서방 정벌이나 알렉산더의 동방 침략은 누가 보아도 침략 전쟁이지만 세계 역사는 이에 대한 강력한 질타를 퍼붓거나, 범죄 행위로 낙인찍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시절의 강대함이나 정복자의 대범함을 존숭하거나, 그렇게 만들어진 제국의 위대함과 그 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재의 초라함을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그 차이를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들은 즉각적인 반론에 직면해야 한다. 일본은 대동아공영을 꿈꾸며 일본 역사상 가장 강대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않고 있고, 그러한 향수는 ‘욱일기’나 ‘독도 야욕’ 혹은 ‘식민 지배의 자긍심’ 등으로 여전히 배어 나오고 있다. 그때마다 주변 국가의 항의와 분노는 치솟을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가장 강력했던 시절은 영광(?)의 시간일 테지만, 그 영광에 희생되어야 했던 이웃 국가 혹은 주변 민족에게는 몰락과 치욕의 기억이었을 테니 말이다.

러시아는 아마도 강력했던 국가의 재건을 내세웠을 것이고, 이를 위해 주변 국가에 대한 무력 행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전쟁의 명분은 이를 위해 조작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웬만한 세계 시민들은 그 명분이 전쟁의 본질적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전쟁의 원인은 결코 상대에게 있지 않다. 전쟁으로 평화가 무너진 세상을 보면, 적을 향한 비난이나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늘 공허하고 지엽적인 명분으로 전락하고 만다. 만일 전쟁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지 않다면,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정되어 있다. 전쟁의 명분을 남에게서 찾지 말고,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여 후대에 그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 사실을 벌써 알고 있었다. 누군가와 다투고 후회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늘 반복하는 일이니 말이다. 러시아와 전쟁 주도자도 이를 빨리 인정했으면 한다. 전쟁의 책임이 자신 안에 있다는 간단한 진실을 수긍할 때 보통 전쟁도 끝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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