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방외 거사 “이제 공자에게 진 빚 갚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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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고’ 출간 노치허 거사

<심학고>를 낸 노치허 거사는 "이기설은 허공에 선 긋기와 같아서 허망한 사변놀이에 불과하다"고 했다.

부산의 노치허(73) 거사는 방외 거사의 면모를 지녔다. 그는 5년간 9권의 책을 낸 데 이어 지난해 <방외달사 소동파>를 냈고 최근 또 <심학고(心學考)>(학자원)를 냈다. 그는 밀양의 대학자인 소눌 노상직(1855~1931)의 증손이다. 불교와 유교에 두루 밝고 부산 문화계에 상당한 출입을 했다.

<심학고>의 출간을 두고 그는 “이제 공자에게 진 빚을 갚은 것 같다”고 했다. 이 책은 굉장히 비판적인 책이다. 공자의 종지와 불교의 종지가 서로 통한다는 입장에서 성리학을 비판한다. 특히 성리학의 가장 앞자리에 있는 주희와 이황을 크게 비판한다.

대학자 소눌 노상직의 증손자
5년간 9권 저술, 활발한 활동
공자-불교는 통한다는 입장서
주희·이황 학설 강력하게 비판
“성리학은 허공에 선 긋기 불과”

그는 한국 유학 사상을 아주 달리 본다. 조선시대 최고의 유학자로 조식과 이이, 그리고 노수신 성운 성수침을 꼽는다. “이들 고사(高士)는 잡다한 사변보다는 공자의 도(道)를 체득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깨친 이들이라는 거다. 주목할 것은 이들은 모두 16세기에 활동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조선 개국 후 세종의 문치로 대표되는, 자신감이 넘치던 15세기가 지나간 뒤, 연산군 폐정 이후 임란으로 내달았던 선조 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위축기인 16세기에 저마다의 사상이 꽃처럼 피어났다고 할까.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사상은 정치와 시차를 달리해 조금 늦게 날갯짓한 것이었다. 그는 5명과 함께 17세기 신흠도 깨친 이에 포함시켰다.

책의 6개 장 중에서 앞의 3개 장은 당나라 이고의 <복성서(復性書)>, 북송 주돈이의 <통서(通書)>, 남송 진덕수의 <심경(心經)>을 주석한 것이다. 그가 심학의 절편으로 꼽는 것들을 해설한 것이다. 그중 <복성서>는 책 전체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자기(自己)의 성(性)을 회복하는 것이 공자의 본뜻이라는 생각을 담은 책이다. 그 주석에서 노치허 거사는 “성을 인(仁)이나 덕(德)이 아닌 주희처럼 이(理)로 보는 것은 그림자를 보는 것에 불과하다”며 불방망이를 내보이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인 박병련 남명연구원장은 “가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는(無可無不可) 공자의 심학은 이기(理氣)의 논리적 해부로 적연히 알 수 있는 도리가 아니다”며 “<복성서> 해설을 읽으며 세 번 무릎을 치면서 탄식했다”며 노 거사의 책을 ‘유교본원론’이라고 서(序)에 썼다.

<심학고> 후반부 3개 장은 노 거사가 직접 쓴 것으로 ‘음양설’ ‘주희의 천견고’ ‘이황의 천견고’이다. ‘천견고(淺見考)’란 ‘얕은 견해 고찰’이라는 뜻으로 그가 보기에 주희와 이황의 이기설은 “허공에 선 긋기와 같아서 허망한 사변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희와 이황을 싸잡아, 깊이 있게 비판하는 그 자리가 방외(房外)의 자리일 것이다. “공자는 ‘나의 도는 일이관지(一以貫之)’라며 오직 하나의 성(性)만 말했다. 성(性)을 본연지성 기질지성으로 나눠 온갖 잔소리를 갖다 붙인 것이 성리학이다. 주희를 따른다면 공자를 등지는 사람이 된다. 주희가 옳은가, 공자가 밝은 것인가.”

그는 “공자 사상은 만인평등이었는데 이황은 전답 36만 평에 노비가 300명이 넘었다”며 “이황은 공자의 일이관지에도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이관지란 일심(一心)을 가리킨다”라고 했다. 노 거사의 본명은 노규현이며, 호 치허(치虛)는 ‘묵은 밭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글·사진=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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