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투표하는 당신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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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오늘은 대선일이다. 대통령은 국민 5100만 명이 뽑는 유일한 선출직 공무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자신을 대표해 삶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해 줄 대리인을 선택하는 날이다. ‘상전’이 아니라 ‘머슴’을 뽑는 날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권력이란 단어가 딱 한 번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 2항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갖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아 5년 동안 관리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3월 9일 오늘은 대한민국을 구원할 메시아나 슈퍼맨이 출현하는 날도, 우리가 복종하고 충성할 왕을 추대하는 날도 아니다. 국가 위기를 타파할 영웅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을 위임할 관리자를 선출하는 날이다. 주인의 막중한 책임이다.

사전투표권을 행사한 1632만 명과 9일 아침 투표소가 문을 열기 바쁘게 줄을 서는 국민이 국가 권력의 진정한 주인이다. 지난 한 달의 대선 과정은 정책이나 비전 대결보다는 온갖 막말과 네거티브 공방만 넘쳐 난 진흙탕 싸움이었다. 막판까지 과거에 갇혀 통합과 비전은 오간 데 없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과 불신, 혐오만 산더미처럼 쌓였다. 주권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그 모든 것에 대한 평가는 이제 주인들의 몫이다.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따져 보고,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선거는 정기적인 투표를 통해 주권자가 대리인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정치적 과정이자, 주권자의 이익을 실현해 가는 민주적 통제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권력은 주권자 국민의 것
메시아·왕이 아닌 대리인 뽑는 날

무관심으로는 꿈꾸는 세상 못 만들어
진흙탕 정치판에서도 연꽃 피워야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 지키는 방파제”
투표 통해 주인 권리 행사해야!


전후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최인훈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에 발표한 소설 <광장>에서 “정치? 오늘날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였어요.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 선량한 시민은 오히려 자물쇠를 잠그고 창을 닫고 있어요”라고 절규했다. 정치는 세월조차 비껴가는지 지금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런 오물 더미와 진흙탕에서도 깨끗한 연꽃을 피울 수 있다. 국민의 마음이 전해지고, 큰마음으로 합쳐지면 정치가 국가의 현실과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핵심 활동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현재 우리가 가진 최고의 정치 시스템이다. 무인도나 깊은 산에서 자연인으로 살지 않는 한, 냉소와 무관심으로는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

2500년 전에도 어떤 사람들은 정치에 관여하는 일을 비루하고 세속적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공자는 “정치가 더럽다고 세속을 떠나 산짐승, 들짐승과 더불어 고고하게 살 수는 없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세상이 살 만하지 못하다면 스스로 살 만한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논어)라고 역설했다. 현실 정치가 실망스럽더라도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되며 이를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서 저질 정치에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희생되자, 제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세력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면서 절규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제20대 대통령선거 참여가 중요하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집필한 프랑스 정치학자 A 토크빌은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를 살리고 자유를 지켜 주는 유일한 방파제”라고 통찰했다. 공자와 플라톤, 토크빌을 거쳐 무려 25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정치가 인류로 하여금 행복을 누리게 하는 가장 문명적 행위이고, 정치 혹은 국가 생활 없이 인간은 안전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국가·지도자와 국민을 각각 배와 물로 비유하면서 “배는 물 때문에 뜨기도 하지만, 물 때문에 뒤집히기도 한다”라고 했다.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와 지도자의 존재는 국민의 지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정권에 대한 평가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모두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9일은 주권자의 뜻을 결정하는 날이다. 이제 남은 건 주인이 어떤 대리인, 어떤 머슴을 선택하느냐이다. 프랑스에서 대중투표주의가 싹트기 시작할 무렵, 토크빌은 정치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 몇 가지를 제시했다. 국가와 민족, 공공선에 대한 사심 없는 헌신과 용기, 말이나 사람을 다루는 기술보다는 인품, 건실한 지성, 올바른 신념 등이었다. 후보자의 비전과 정책 실행력도 물론 중요한 자질이다. 주권자 모두가 나름의 기준에 맞는 대리인을 선택해야 한다. 감히 “투표가 총알보다 강하다“(링컨)라고 믿기 때문에, 주권자가 주인 노릇을 해야 국가의 운명을 제대로 바꿀 수 있다. 각자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그리면서, 만사를 제쳐 두고 투표소로 달려가 ‘민심이 천심’임을 보여 주자. 오늘 주인의 마음을 갖고, 투표하는 당신이 가장 아름답다.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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