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부산, 누구를 찍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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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핵물리학을 전공하다 보니, 다짜고짜 찬핵인지 반핵인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마다 번번이 난처하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평행선 논쟁에 섣불리 휘말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같은 편이면 이야기꽃이 만발하겠지만, 자칫 원치도 않았던 설전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그만큼 원전 문제에는 이미 정치적인 ‘편 가르기’가 무성하다.

“일단 데이터를 봐야지. 모두가 그것을 보고, 알고, 생각할 수 있도록 오픈돼야지.”

핵폐기물 문제는 지역 소외 결과
역대 정부 안일한 대책만 되풀이
올 대선에서 분명한 책임 물어야

마침 대선을 앞둔 개강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한 대답이었다. 답을 정해 놓고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건 과학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 차로 불과 30분도 안 걸리는 곳에 핵폐기물이 꽉 차서 넘치기 일보직전이야.”

“심지어 이 쓰레기는 수십만 년을 가는 것들이야. 눈에 보이지도 않는 티끌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그냥 없어질 것들이 아니라고.”

“핵발전을 못하면 당장 전기 수급에 문제가 되지 않나요?”

“그러게.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도대체 무책임한 어른들이 뭘 했는지 모르겠네. 미리 예측을 할 수 없었던,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부산·울산만큼, 밀집된 원전 단지가 수백만 명이 살고 있는 대도시의 지척에 있는 경우는 없다. 서울은 전력자립도가 1.8%에 불과하다.

이것은 지역감정도, 지역이기주의 문제도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수도권이 문제다. 모든 좋은 것은 빨아들이면서 모든 나쁜 것은 뱉어 내고 있다. 의학적으로 암이 그렇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다. 원인도 딱히 알려진 바 없이, 몸의 모든 좋은 것을 빨아들여 엄청난 속도로 증식하면서 몸의 정상적인 기능을 마비시켜 결국 생명을 앗아 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권은 대한민국의 암적 존재다. 인구절벽으로 전국이 텅텅 비어 가는데, 수도권의 인구와 경제의 집중도는 대한민국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다. 한동안 고속철과 광역 교통망이 국가 균형발전의 일환으로 포장되던 때가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역이 발전한 게 아니라, 수도권의 영향과 주말부부만 키워 냈다.

암을 이겨 내는 것은 환자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 암의 증식을 억제하는 항암요법, 암을 죽이는 방사선 조사 등 치료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심성 지역공약과 립서비스를 넘어, 국가 균형발전에 대한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그림, 지역을 되살려 수도권이라는 암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살려 낼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

누구를 찍을 것인가? 누가 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많은 것이 변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이 사회의 모든 현상들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온갖 네거티브로 얼룩진 대한민국 대선의 자화상은 우리들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후보들의 탓만은 아니다. 대통령 후보들의 선동에 놀아나 덩달아 네거티브에 열 올릴 것이 아니라, 부산에 필요한 구체적인 그림을 각 후보에게 내걸고 다짐이라도 받아야 한다. 누구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대한민국을 경멸하면서 투표를 하지 않는 일은 누워서 침을 뱉는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에는 한 사람을 찍어야 하고, 나아가 누가 되더라도 부산의 구체적인 정치적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이야기하지만, 특히 유념할 것은 그 미래는 우리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결정할 만큼 과연 우리는 현명한가? 백주대낮에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어 간 수백 명의 아이들과, 장밋빛 미래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예측 불가능한 무한 경쟁 속으로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을 목도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은 변할 생각조차 안 하면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며 자조적인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이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시작해 수년간 평행선만 달려온 원전 핵폐기물 처리에 대해서 20대 대통령 후보들도 대동소이한 대책만 안일하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적어도 단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질문을 좀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부산시민의 입장이라면 오늘 투표하기 전에 몇 개만 생각해 보자. 원전을 계획했을 때부터 분명히 예상이 가능했을 핵폐기물의 양과 시한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것은 누구였나, 핵폐기물의 궁극적인 해결은 누가 해 줄 것인가, 이제라도 망국적 수도권 집중은 누가 막아 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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