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지켜보는 따뜻한 누군가… 동화 속엔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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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희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녹여낸 동화를 통해 지금 어딘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을 위로한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나의 어린 시절을 위로해준 책, 나도 책으로 지금 힘든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다.’

동화작가 이분희는 2018년 3월 자신의 첫 책 <한밤중 달빛 식당>(비룡소)을 세상에 내놓았다. “30대 초반 글을 쓰기 시작해 등단까지 15년이 걸린 아주 느린 작가입니다.” 이 작가의 글쓰기는 IMF 사태가 계기가 됐다. 전문대를 나와 대기업 소속 직원이 된 그에게 ‘좋은 대학-좋은 직장’의 길을 걷는 또래들은 ‘성공’ 그 자체였다. “SKY를 나온 사람들이 다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뭔지, 나의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어요.”

‘한밤중 달빛 식당’ 등 세 편
늦깎이 동화작가 이분희
“가난하고 힘들었던 유년기
제 유일한 방패는 도서관 책
아이들도 그렇게 위로 받길”

마침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아이를 보며 작가는 생각했다. ‘나는 꿈이 없었구나.’ “너무 가난해서 한 번도 꿈을 가진 적이 없었어요. ‘나는 어차피 안돼’ 하며 살았지만 아이를 그렇게 키울 수는 없잖아요. 엄마인 나부터 달라져야겠다 싶었죠. 생계를 꾸리면서 할 수 있는 것 중 돈이 제일 안 드는 일을 찾았죠. 글쓰기는 가성비가 좋았어요.” 풍부한 상상력을 밑천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

<한밤중 달빛 식당>과 두 번째 책 <신통방통 홈쇼핑>(비룡소)은 각각 공모전인 비룡소문학상, 황금도깨비상을 통해 출판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말에는 <사라진 물건의 비밀>(비룡소)도 펴냈다. 특히 <한밤중 달빛 식당>은 큰 인기를 끌어 지금까지 20만 부가 팔렸다. 이 책은 중국에 이어 대만에서도 출간돼 호평을 받았다. 올 초에는 중국 ‘2021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책’ 아동문학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현지 어린이들이 직접 선정한 결과라 더 의미가 있다.

<한밤중 달빛 식당>에는 은유와 상징이 많이 들어있다. 엄마를 잃고 술에 빠진 아빠와 살아가는 초등학생 연우. 작가는 외로운 연우를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털 많은 동물과 연결시켜 준다. “스무 살 무렵 초읍 어린이대공원에서 아기 여우를 봤어요. 너무 예뻐서 한참을 같이 놀며, 남들이 보여주는 여우와 내가 확인한 여우 이미지가 다를 수 있음을 알았어요. 글을 쓰면서 그때 본 여우를 떠올렸죠.” 한밤중 같은 마음을 가진 연우에게 달은 엄마 같은 존재다. “내가 아무리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홀로 서 있어도 주변에 달빛 같은 존재가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이죠.”

이 작가의 작품에는 ‘부정적 감정’에 대한 표현이 많다. 연우가 친구 돈을 훔치는 장면이나 <신통방통 홈쇼핑>의 찬이 아빠가 사업이 망해 도망가고, 엄마가 아이를 큰할아버지 집에 두고 가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이 작가는 실제로 학부모에게서 책에 왜 ‘나쁜 일’이 나오는지 질문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동화를 쓰는 목적을 이야기했다.

“단순히 재미있는 동화를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처 많은 아이나 결핍된 아이들에게 ‘그래도 너를 지켜보는 따뜻한 눈길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지독한 가난, 폭력적 성향의 아버지, 몸이 약한 어머니. 이 작가는 책 속 주인공들처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성적이라 친구도 별로 없고 집에 가도 내 방이 없는 아이에게 책은 ‘방패’가 되어줬다.

“학교 도서관에서 이주홍 선생의 <메아리>를 읽고 1시간 넘게 혼자 울었어요. 실컷 울고 나니 내일이면 내게도 돌이처럼 송아지 한 마리 같은 희망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생길 것 같았죠.” 이때부터 시작해 이 작가는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었다. 책은 내일을 살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모두 만날 수는 없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책을 쓰는 거죠. 아이들이 제 책을 한 번이라도 읽고 힘을 얻었으면 했어요.”

독자들의 서평을 보며 이 작가는 ‘어린 시절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힘듦을 속에 숨겨두지 않고 밖으로 꺼내 놓으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누군가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 받으며 세상을 함께 바꿔나갈 힘을 얻게 된다. “작가가 되길 정말 잘했다 싶어요. 제 동화를 어른들도 함께 읽어주면 좋겠어요.” 이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네 친구의 탐정 활동기와 남매가 등장하는 판타지, 두 편의 장편 동화를 구상 중이다. 출판사와 계약도 마쳤다. 그는 해리 포터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판타지 동화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이 작가는 ‘진짜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난한 아이였던 그가 위선적인 어른의 모습에 좌절한 날. 학교 화장실 구석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보던 작가에게 한 친구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도 니가 우리 반에서 최고야.” 그 말에 작가는 삶이 그렇게 깜깜하지는 않고, 누군가는 자신을 제대로 봐준다는 것을 알았다.

“흔히 용기를 영웅적인 어떤 것이라 생각하지만, 제가 살면서 깨달은 진짜 용기는 소소한 말 한 마디, 누군가를 따듯하게 바라보는 눈빛 하나 그런 것이더라고요. 그게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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