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49. 고육지책과 궁여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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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어느 예술원 회원이 생전 박경리 선생을 찾아뵙고 회원이 되실 것을 권유하자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어느 신문에 실린 이 기사 한 줄은 한자말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한자말이 얼마나 엉터리로 쓰이는가를 한눈에 보여 준다. 일화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이야기’라는 말뜻을 모르니 전혀 어울리지 않게 ‘유명하다’고 한 것. 게다가 ‘유명하다’ 역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뜻이니 널리 알려진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화는 유명’이라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표현이었던 것. 될 수 있으면 한자말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스라엘 “美 등 10개국行 여행 금지” 고육책>

<내년 전기·가스요금 동결 가닥.. 대선·물가 상승 우려한 고육책>

이런 기사 제목들에 나온 ‘고육책’ 역시 많이들 엉터리로 쓰는 한자말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고육책(苦肉策): 자기 몸을 상해 가면서까지 꾸며 내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꾸며 내는 계책을 이르는 말. =고육지책.(이번 싸움에서는 고육책을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핵심 내용 중 일부를 수정키로 한 것은 당초 안에 대한 환경론자와 개발론자의 비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즉, 고육책은 ‘자기 몸을 상해 가면서까지’ 쓰는 계책이라서, 단순한 ‘계책, 대책’에 쓸 말이 아닌 것. 고육책과 비슷한 뜻으로는 이런 말도 있다.

*고육계(苦肉計): 자기 몸을 상해 가면서까지 꾸며 내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꾸며 내는 계책을 이르는 말. =고육지책.

원래 이 고육계는 중국의 병법인 ‘삼십육계비본병법(三十六計秘本兵法)’ 가운데 제34계다.(성동격서(聲東擊西)가 제6계, 반간계(反間計)가 제33계다.) 36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 고육계는 <삼국지연의> 적벽대전 편에 나온다. 오나라의 주유가 부러 황개를 반죽음을 시켜 조조를 속인 장면이 바로 교과서 같은 사례인 것. 누구는 자기 아들을 요리해 제나라 환공에게 바친 역아를 사례로 꼽기도 한다. 어쨌거나 핵심은, 자기 몸을 상해 가면서, 손해를 보면서까지 쓰는 계책이 고육책·고육계이라는 것. 그러니 아래 기사 제목은 적절히 쓰였다.

<중대재해법 첫 타깃 피하려 ‘공사중단’ 고육책까지>

그냥 단순히 궁리해 짜낸 계책이나 대책은 ‘궁여지책’으로 쓰면 될 듯. ‘궁책, 궁계, 말계’도 모두 같은 뜻이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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