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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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에서 제다까지/이상윤

세대 갈등이 증폭되는 메카니즘을 살펴보면 그 이면엔 다양한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인간과 시대’에 대한 인식 부족을 핵심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시대의 인간과 풍족한 시대의 인간 가치관이 동일할 수 없고,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의 인간과 다양성과 자유가 꽃핀 현재 인간의 사고 구조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질적으로 보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는 실상 한 몸과 같다. 현재는 과거에, 미래는 현재에 각각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세대별 가치관도 그럴 것이다. 갈등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시대별 특성과 차이를 인식하려는 각 세대들의 노력이라는 지적이 거센 것도 이런 이유다.

격동의 현대사 얽힌 가족사 담담히 묘사
중동 산업역군 아버지·어머니 삶 큰 울림

는 인간과 시대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세대 갈등을 풀 실마리를 제시한다. 1970년생인 저자는 81세인 아버지, 작고한 어머니가 경험한 시대상과 삶을 중심으로 조부 때부터 이어진 가족사를 잔잔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린다. 일제강점기와 산업 격동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에 가까운 시대와 인간사를 조명하면서 각 세대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가득 담았다. 작가의 가족사를 고스란히 옮겨놓았지만 단순한 기록물 형태가 아니라 소설의 형식으로 전개한 점도 무척 흥미롭다. 에서 사회부장과 경제부장 등을 역임하며 27년째 기자로 활동하는 저자의 남다른 필력은 사실감과 흥미를 한층 더한다.

소설의 주된 무대는 부산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라는 지역이다. 저자 가족사의 가장 큰 분기점은 1970년대. 소설 속 주인공인 작가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중동의 제다로 떠난다. 당시 중동 국가들이 1·2차 석유파동의 반대급부로 축적한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대규모 건설 공사를 발주하면서 1980년대까지 200만 명이 넘는 한국 노동자들이 건너갔다. 그들이 송금한 달러는 공업 입국의 초석이 됐고, 1990년대 이후 풍요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작가는 한 가장을 통해 한국의 중동 진출사, 중동 특수에 숨은 미시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아버지가 없이 지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등 노동자 가족들의 아픈 희생에도 초점을 맞춘다. 소설의 또 다른 축은 작가 어머니의 이야기다. 작가는 어머니를 ‘아버지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를 필사적으로 지키면서 외로이 나와 동생을 키워내신’ 분이라고 말한다. 특히 소설 속 화자인 저자는 이 작품의 모티브인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소설 주인공이기도 한 작가의 부친은 각종 무술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품고 있었다. 태권도 여명기와 함께한 주인공이 휘말린 각종 활극은 소설에 색다른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부산 토박이인 저자는 가족사 이외에도 부산에서 명멸한 조선공사와 조선방직 등 역사 속 기업들과 그 일터를 둘러싼 당시 사람들의 삶의 기쁨과 각종 애환도 함께 녹여낸다.

부모와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는 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라는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이상윤 지음/석영/302쪽/1만 3000원. 천영철 기자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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