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의 지발도네(Zibaldone)]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엇인가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1914년 8월 2일 일요일, 카프카는 일기장에 두 문장을 적었다.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오후에 수영.’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나는 불현듯 저 카프카의 두 문장을 떠올렸다. 카프카의 일기는 전쟁과 일상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두 범주가 잠깐 동안 마주하는 역설의 순간을 보여 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나도 카프카처럼 이 역설을 경험했다. 올해 여름 나는 조지아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석한 후 지인을 만나러 키이우에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의 세계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러시아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올해 기획한 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고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한번 연락이 온 뒤로 감감무소식이 되었다. 푸틴 정부가 모든 소셜미디어를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스위스로 연구년을 떠난 영국인 직장 동료는 지하에 있는 방공호를 점검 중이라고 했다. 유럽의 친구들은 이 전쟁을 ‘유럽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지금 상황을 1930년대와 유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푸틴 개인서 침공 동기 찾는 건 피상적
서방 문명과 경계 짓는 러시아 민족주의 발호
사회주의 체제 붕괴할 때 이미 예견된 것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3월 15일 자 칼럼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상황을 복기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을 방치했다간 3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분쟁들이 연쇄적으로 반응하면서 마치 댐의 물이 임계점을 넘는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전쟁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유럽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자 에티엔 발리바르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푸틴의 침공을 애써 무시하면서 평화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최선의 방책일 수 없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카프카의 일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먼 산 불구경하듯이 보면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착한 과거의 메시지이다. 이 전쟁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현 체제를 구축한 당사자 중 하나인 러시아가 불러온 사건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숱한 작은 전쟁들이 있었고 무고한 이들이 국가 폭력에 방치되어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분쟁들과 일정하게 성격이 다른 셈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얼마 전까지도 올여름에 방문할 키이우의 모습을 그려 보고 있었다. 이 사실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서 러시아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글로벌 협력 체제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나 푸틴은 이런 국제관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침공을 감행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푸틴의 침공 동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분석이 있었지만 대체로 문제는 푸틴이라는 인물의 특성으로 귀결하는 느낌이다. 심지어 푸틴의 병증을 침공의 원인으로 제시하는 다소 황당한 내용도 있다.
그러나 푸틴을 일종의 광인으로 보는 관점 자체가 러시아를 ‘야만의 제국’으로 봤던 과거 유럽의 편견을 되풀이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키예프’(키이우)라는 상징성을 탈환함으로써 과거의 러시아 제국을 다시 복원하려는 것이 푸틴의 의도라는 분석도 피상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오늘날 러시아 민족주의를 사상적으로 대변한다고 알려진 알렉산드르 두긴 같은 이데올로그의 사고방식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이데거를 사숙한 것으로 알려진 두긴은 이 독일 철학자의 반서방주의를 연상시키는 논리로 자유민주주의가 러시아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독소라고 비판한다. 오직 ‘러시아의 본래성’이 진리이고 이 진리가 러시아의 정체성이라는 주장이다.
러시아를 독자적인 문명으로 규정함으로써 두긴은 서방세계와 다른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다른 문명의 결과로 정의하고자 한다. 과거 박정희의 토착적 민주주의나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국가 간 전쟁이 아니라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의 지배를 거부하는 ‘정의의 전쟁’이 되는 셈이다. 더 나아가 러시아라는 고귀한 정신이 병든 서방세계의 물질주의를 제압하는 구원의 아마겟돈이기도 한 것이다.
솔제니친의 가 출간되고 많은 유럽의 지식인이 소련 사회주의 체제에 실망을 표현했을 때,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그 사회주의 체제를 부정할 때 남는 것은 도스토옙스키로 수렴하는 ‘러시아의 본래성’이라는 모호한 신화일 뿐이라고 예언했다. 바디우는 자신의 예언이 실현되길 바라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는 푸틴과 두긴의 러시아를 만들었다. 어쩌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이미 위기는 시작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