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하늘의 섭리·인간의 도리 담은 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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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천자문/김성동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고 그 목숨이 눈앞에 이르렀다고 합시다. 당장 급한 것은 화살을 뽑아내고 독을 없애 버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독화살을 쏜 사람은 누구요 왜 쐈으며 또 화살에 발린 독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을 따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주의 비롯됨과 마침에 관해 묻는 중생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0년 만에 복간한 은 이렇게 서두를 알린다. 우주와 자연의 이치를 담은 ‘천(天) 지(地) 현(玄) 황(黃) 우(宇) 주(宙) 홍(洪) 황(荒)’으로 시작하는 천자문의 성격을 엿보는 듯하다. 비롯됨도 없고, 끝남도 모르는 없는 대자연의 위대함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만능이라는 현대 과학도 우주의 갈피 하나 밝혀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소설 의 작가인 저자는 다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 앞에서 두 무릎 꿇고 앉아 천자문을 배웠다. 그만큼 1구 4자 250구, 모두 1000자로 된 천자문은 옛사람들이 학문을 익히는 데 첫걸음으로 여겼던 으뜸 본 바탕 책이었다. 하늘의 섭리, 땅의 원리. 인간의 도리를 고스란히 담은 한 편의 장시이다.

저자는 천자문 해설과 함께 그의 문학적 감수성이 듬뿍 담긴 에세이를 전한다. 한국 현대사와 얽힌 집안 내력 얘기와 사서삼경, 자본론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의 향연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문을 다루는 내용인데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곳곳에 심어 놓고 친절하게 풀이까지 달아놓은 점은 이 책을 빛나게 한다. 작가가 직접 쓴 천자문 붓글씨는 ‘김성동체’라는 이름을 붙일만하다. 김성동 지음/태학사/312쪽/2만 2000원

이준영 선임기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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