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새로운 시작, 봄!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이해인 수녀의 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새로운 봄이 왔다. 엄동설한을 견디고 맞이하는 봄은 언제나 희망과 미래를 상징한다. 천문학적으로는 춘분(3월 21일)부터 하지(6월 21일)까지를 봄으로 부른다. 춘분부터 20여 일이 1년 중 기온 상승이 가장 큰 때로 알려져 있다. 마침 오는 25일에는 한낮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춘분은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기 때문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춘분을 맞은 봄의 태양은 겨우내 땅속에 숨어 있던 생명체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매일 동쪽에서 떠올라 빛과 열을 퍼뜨리는 태양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생명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삶을 동화시키려 했던 고대인들에게 해와 달은 신화적 상상력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매개로 작용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봄의 약동을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으로 파악했던 고대 중국인들은 춘분의 별자리를 ‘용성’이라 불렀다. 고대 중국에서는 용을 왕권의 상징 문양으로 간주해 왕좌를 용좌, 왕의 얼굴은 용안, 왕의 의자는 용상이라 불렀다. 중국의 왕들은 춘분이 되면 용이 그려진 예복을 입고 동쪽 교외로 가 어둠을 물리치고 생명 빛을 쏟아 내는 태양을 맞이하고, 농사를 위한 비를 기도하는 행사를 치렀다.
수만 년 전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시작됐다. 벌써 주변에는 산수유와 매화가 만개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이 지천으로 필 것이다. 올해는 봄의 시작이 더 애절하게 다가온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 번째로 맞는 이번 봄이 혹시나 ‘새로운 시작’이지 않을까 하는 갈망 때문이다. 5월 10일 신임 대통령 취임에서부터, 정점을 지났다고 예측되는 코로나19 팬데믹의 향방 등 보다 나은 봄에 대한 열망이 언 땅을 조금씩 녹이고 있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까지 왠지 세상이 어수선한 지금, 새로운 변화의 햇살이 반갑기만 하다.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라는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당장은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새로운 삶이 싹 틔울 것이란 기대감으로 꽃놀이를 떠나고 싶다. 기지개를 켜고, 새봄을 아름답게 맞이하자.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