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랑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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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밀레니엄을 목전에 둔 1980~90년대는 헤비메탈이 전 세계 대중음악을 주름잡던 시대였다. 당시 ‘메탈 아재들’의 ‘끼’는 정말이지 못 말릴 정도였다.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머리를 치렁치렁 길렀으며 광폭한 기타 사운드 위로 마구마구 고함을 질러댔다. 음악도 시대의 반영이다. 그 시절 남자들은 ‘되지도 않은’ 현실을, 암울한 세기말을 그런 모습으로 저항했던 거다.

헤비메탈 밴드의 얼굴마담은 노래를 부르는 보컬리스트다. 그러나 그 자질은 얼굴이 아니다. 고음을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 바로 그것이었다. 그 시절 국내에서 초절정 고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장 유명했던 노래가 바로 ‘쉬즈 곤(she's gone)’이다. 레게 음악의 선구자 밥 말리나 하드록의 아버지로 불리는 블랙 사바스가 발표했던 동명의 노래도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록밴드 스틸하트(steelheart)의 곡을 최고로 친다. ‘그녀가 떠나갔다’는 절규가 4단 고음 속에서 폭발하는 이 노래는 유난히 한국에서 사랑받았다.

노래 좀 한다는 사람 치고, ‘쉬즈 곤’에 도전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 곡 중간쯤에서 추풍낙엽처럼 스러지기 일쑤다. 노래방에서 괜히 틀어 놓고 한 명씩 부르다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 3옥타브를 넘어가는, 워낙 높은 고음이 연속되기 때문이다. 이런 고음은 두성을 쓰다가 가성을 강한 압력으로 내뱉는 테크닉이 필수적이다. 항간에는 “완전히 초음파를 쏴 댄다” “저래서 공룡이 멸망했나” “어미 잃은 익룡도 저렇겐 안 울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이 노래를 부른 스틸하트의 전설적인 보컬이 바로 크로아티아 출신의 미국인 밀젠코 마티예비치다. 그를 대표적 친한파 가수로 만든 건 한국인의 유별난 사랑이었다. 그는 2016년 TV 음악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출연해 왕년의 인기를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밀젠코가 최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신곡 ‘트러스트 인 러브(trust in love)’를 발표했다는 소식이다. 원래 하나였고 서로 사랑했던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갈라져 있는데 마음을 열어 믿음과 사랑으로 새로운 평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내용이다.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아예 한국 전통의상을 입고 우리말과 영어로 번갈아 노래 부른다.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갈등과 분열에 빠진 국내 상황에도 꼭 들어맞는 이 노래, 서로를 존중하자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에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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