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죽음에 무뎌진, 고립에 무심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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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뉴스를 통해 발표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 2년째 반복되고 있다. 3월 22일 기준, 코로나로 인한 누적 사망자는 1만 3141명이다. 코로나 치명률이 계절 독감 수준에 이르렀다는 발표에도 사망자는 급증하는데, 사회적 반응은 덤덤하다. 장례 대란 등 기사가 보도되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은 ‘청와대 이전’보다도 높지 않다. 연일 30만~40만 명에 달하는 확진자 수에 비해 300~400명의 사망자 수치는 가벼워 보이는 것일까. 죽음에 무뎌진 사회가 된 것일까. 고령자, 기저질환자는 애초에 고위험군이므로 이들의 감염이 중증, 사망으로 이어진 것은 별일 아닌가. 정부는 시급히 현행 감염병 대응 체계와 다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요양시설·병원 관리 체계에 허점은 없는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사망자 급증의 원인으로 요양시설 방역패스 폐지, 낮은 4차 접종률, 먹는 치료제의 저조한 활용 등을 꼽았다. 현시점에 한정해 문제를 바라본다면 그럴 수 있지만, 팬데믹 2년으로 확장한다면 달리 볼 수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요양병원 등 복지시설에 대한 정부 방역 방침은 시설 폐쇄와 격리였다. 격리로 인한 고립이 면역력 저하로, 감염 및 중증화, 사망 위험의 증가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사실은 사회적 고립이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이지 않았을까.

폐쇄시설에서 감염·사망 비일비재
바이러스보다 단절·고립 상황이 심각
감염병 대응 체계 등 재점검 시급

요양시설을 돌봄 중심으로 바꾸고
복지 체계 연결·관계 보장으로 확대
빈곤, 불평등, 사회적 고립 해소해야


바이러스가 아닌 ‘사회적 고립’에 주목하면, 그간 통계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죽음들이 드러난다. 2020년 무연고 사망자 수는 무려 2880명이었다. 코로나19 사망자 수보다 많았지만 주목받지 못한 채, 빈곤, 가족관계 단절에 더해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인한 고립 속에서 수천 명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무연고 사망자 다수는 폐결핵, 알코올 중독, 간 질환을 앓고 있는데,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퇴원하더라도 쪽방, 고시원 같은 열악한 주거 공간에서 제대로 식사도, 건강관리도 받지 못했다. 격리, 폐쇄, 거리 두기 등 적극적인 방역 조치가 가뜩이나 고립된 이들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일지 예측하고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해 발생한 죽음이라면, 정부 당국은 책임의 무게를 통감하고 대책을 고심해야 한다.

자살 사망자 수도 1만 3195명에 이르렀다. 자해·자살 시도자는 무려 3만 5000명에 달했다. 특히 30세 이하 여성은 1만 3494명(남성 6259명)에 이르렀다. 실업, 빈곤, 직장 따돌림 등 사유는 다양하고 복합적이었지만, 도움 구할 곳 없는 고립 상황이 죽음으로 내몰았다. 가족관계 단절, 사회적 고립 상황은 코로나 이전부터 존재했을 수 있다. 하지만 고립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은 대비책 미비 상황을 초래했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고립된 사람들의 삶을 속수무책으로 무너뜨렸다. 문제는 바이러스인가, 사회인가.

2021년 우리나라 사회적 고립도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 위기 상황 시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이 전 국민의 34.1%에 달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보다 6.4%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60대 이상의 고립도는 41.6%에 달한다. 고립과는 거리가 멀어야 할 청년의 27~28%가 고립 상황이라는 것은 심각하다. 최악의 청년 취업난, 주거난, 도움 구할 데 없는 복지 사각지대의 결합이 청년에게는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이었음이 분명하다.

이제는 죽음에 무뎌지고 고립에 무심한 사회가 아니라, 서로 돌보고 연대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고령자 감염 취약성을 증폭시킨 것은 폐쇄적이고 열악한 요양·생활 시설 환경이었다. 이를 개선하고, 중장기적으로 ‘시설’ 중심 체계를 지역사회 돌봄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 돌봄의 책임을 가족에게 던져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떠안는 것은 차기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로 추진돼야 한다. 폐쇄된 시설에 장기간 고립돼 집단감염, 사망으로 이어지는 일도, 국가의 돌봄 지원 공백으로 돌봄 과부하가 걸려 죽음을 택하는 일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실상 코로나보다 더 치명적인 빈곤, 불평등, 사회적 고립을 해소해야 한다. 이들의 치명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일상 회복은커녕 양극화 심화로 갈 것이다. 사회적 고립 해소는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한계적이다. 현행 복지 시스템을 기초생계 보장을 넘어 사회적 연결·관계 보장까지 아우르고, 가족 부양을 탈피해 개인의 삶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는 관련 법·제도 및 재원을 마련하고, 지방정부는 민간 기관,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단 한 명의 시민도 고립되지 않도록 생활, 돌봄, 관계망을 아우르는 지원 체계를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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