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 예상 뒤엎고 장기화… 신냉전 ‘방아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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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

예상을 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령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속전속결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점령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결사항전으로 러시아가 고전을 면치 못했고 전쟁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전쟁의 반작용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동맹은 더욱 끈끈해졌다. 전쟁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신냉전’의 서막이 오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전쟁 영웅 부상
결사 항전 우크라, 동맹국과 ‘똘똘’
유럽·대만 등도 군비 증강 나서
미·중 갈등에 신냉전 기류 ‘증폭’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양국의 전력차가 크고 러시아가 장기간 대규모 군대를 수개월간 접경에 대기시켜온 만큼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오히려 장기화하는 양상이다.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 접경 주둔 병력을 늘리면서도 침공설을 일축했다. 침공 일주일 전에는 벨라루스, 러시아 서부와 크림반도, 흑해 등 3개 방면에 병력을 19만 명으로 증강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하지만 26만 명 정도인 우크라이나 병력에 맞서 전면전을 벌이기는 어려운 만큼 키이우로 곧바로 진격해 항복을 받아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당초 서방은 키이우 함락까지의 시간을 나흘로 예상했다.

전쟁은 그러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러시아군은 지상군과 공군의 합동 운영, 병참에서도 허점을 드러내며 고전을 이어갔다. 세계 2위 군사력의 러시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다.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신속 점령하는 것을 포기하고 최근 포위 작전으로 변경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는 시가전을 벌이면 손실이 클 수밖에 없는 만큼 포위 후 도시로 이어지는 보급선을 끊어 ‘고사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전쟁 범죄’ ‘살인’이라는 규탄에도 민간인을 대거 희생시키는 살상 행위는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전쟁 영웅 부상, 젤렌스키 대통령

침공 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탈레반에 속절없이 무너졌던 아프가니스탄 정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전쟁 초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처럼 도주했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침공 이틀째 직접 스마트폰을 들고 키이우 거리에서 인증 영상을 찍어 올리며 소문을 일축했다. 미국의 해외대피 지원도 거절했다. 영상에서 그는 “각료들과 대통령이 모두 여기에 있다. 군대도 여기에 있다. 시민과 사회도 여기 있다. 우리 모두는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여기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며 국민들을 독려했다.

시민들도 이에 호응해 화염병을 만들고 총동원령에 따라 총을 들었고 서방이 지원한 무기도 우크라이나 저항에 보탬이 됐다. 독일, 스웨덴 등은 오랜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했으나 확전을 우려한 서방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폴란드 등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동유럽의 나토 회원국은 평화유지군 형태의 직접 파병을 주장하지만 미국은 병력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가입을 신속히 승인해 달라고 촉구했으나 사실상 거부당했다.



■러, 신냉전 방아쇠를 당기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종식한 후 나토는 동유럽권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도 군비 증강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나토 회원국은 2014년 ‘국내총생산(GDP)의 2%로 국방비 확대’를 약속했지만 지킨 나라는 미국, 영국 등 몇 나라 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에 놀란 유럽은 서둘러 군비 증강에 돌입했다. 소련의 군사 위협에 맞서 창설됐던 나토는 소련 해체 후 동력을 잃어갔지만 러시아라는 잊힌 적국이 다시 등장하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형상이다.

독일의 변화는 가장 극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군비 증강에 가장 소홀했고, 서유럽권에서 러시아와 유대관계가 가장 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1000억 유로(약 134조 2000억 원)의 추가 국방기금을 조성하고 2024년까지 현재 GDP 대비 1.5% 수준인 국방비도 2% 이상으로 끌어 올리기로 했다.

나토의 동부 최전선인 동유럽 국가들은 더 급하다. 인접한 우크라이나가 공격받는 것을 보며 전쟁을 가장 체감하는 탓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한 첨단 방공체계 구축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또 다른 신냉전의 축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과 일본, 한국, 호주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도 군비경쟁에 나선 상태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도 신냉전 기류에 합세하면서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러시아 간 경제 전쟁도 시작됐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제재에 소극적일 것으로 전망했지만 2027년까지 ‘에너지 독립’을 선언하고 최근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검토하는 등 미국에 발맞추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는지 여부로 국제사회는 둘로 갈라졌다.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됐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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