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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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를 들었다. 잠수를 마친 해녀들이 물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며 내는 소리다. 휘파람 소리 같다. 물질은 욕심을 내거나 실수하면 죽음까지 이어지는 위험한 일이다. 해녀들이 숨비소리를 ‘생과 사의 경계’라고 부르는 이유다. <삼국사기>의 ‘섭라(제주)에서 진주를 진상했다’는 기록을 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해녀들이 있었다. 1887년 제주도 해녀가 처음 섬 밖으로 진출한 곳이 ‘부산부 목도’, 지금의 영도였다고 한다. 덕분에 부산에서도 숨비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운대 마린시티를 배경으로 물질하는 해녀들의 모습은 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제주시 구좌읍에 자리 잡은 ‘해녀의 부엌’. 아흔이 넘어서도 현역으로 뛰는 해녀로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생선을 경매하던 위판장을 소박한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꾸몄다고 했다. 원정 물질을 떠났다 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잃은 사연, 해녀가 되기 싫어 도망쳤다가 자식을 위해 다시 물질에 나서며 운명을 받아들인 일…. 해녀들의 삶을 담은 연극은 감동적이었다. 톳밥, 전복물회, 갈치조림, 뿔소라 꼬치, 군소, 우뭇가사리 무침 등 해산물로 제주 전통음식을 만들어 나왔다. 평소보다 더 맛깔나게 느꼈던 이유는 스토리텔링의 힘이었던 것 같다.

부산의 해녀는 800명대 이하로 줄었다. 1915년 부산·경남 1700여 명에 달했던 기록에 비하면 절반가량이다.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라 20년만 지나면 부산의 해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신규 해녀 정착금 지원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해녀의 부엌에는 지난해 초까지 3만여 명의 누적 고객이 다녀갔고, 2호점까지 열었다. 일본 수출길이 막힌 뿔소라의 판로를 넓히는 데서 시작해 제주 상품의 플랫폼이 되겠다는 큰 꿈까지 꾸고 있다. 성공 사례는 적극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에 뜻밖으로 1920년대 영도 해녀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또한 다이버 출신 조미진(51) 씨가 바닷속 환경오염 상황을 알리기 위해 최근 해녀로 등록해 오랜만에 ‘아기 해녀’가 탄생했다. 쇠락하던 부산 해녀 사회에 새 바람이 부는 느낌이다. 그동안 크루즈를 타고 들어온 관광객들이 부산에는 볼 것이 없다며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애환이 깃든 출향 해녀의 숨비소리를 해양문학 등으로 엮어 낼 필요가 있다. 부산의 숨비소리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오페라하우스에 오르는 날을 상상해 본다. 부산 숨비소리의 다음 장을 활짝 열자.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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