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폭력에 맞서 온 힘 다해 분투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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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첫 소설집 ‘파브리카’


작가는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나 북쪽 끝 동네에서 살고 있다’고 해놨다.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지현(31) 소설가가 첫 소설집 〈파브리카〉(호밀밭)를 냈다.

20~30대 청년들의 사회·정신적 불안 우울 좌절이 짙게 묻어나는 작품집이다. 그들은 ‘애써 구축한 자기만의 요새가 붕괴되고 곳곳에 팬 구멍으로 자꾸만 미끄러지는’ 세상의 폭력 앞에 맨몸으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도시에 사는 부산 청년들 모습이 어른거린다.


‘부산일보’ 신춘 출신 작가

5편의 단편 담은 소설집

2030 청년 불안·좌절 조명



작품들을 보면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전염병’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는 와중에 ‘중희’는 계약직에서 잘린 뒤 취직을 지원하는 데마다 불합격 통지를 받으며 장장 6개월이나 원룸에 처박혀 있다. 방구석에 처박혀 정신이 나가면서 위층의 층간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고를 치는데…(‘방’). 수개월 간 오후에 비가 내리는 이상 기후 속에서 감정의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을 공격하는 도시에서, 일자리가 없던 ‘P’는 비참하게도 ‘엄마의 유부남 애인’ 소개로 겨우 미화원이 됐는데 ‘더러운 새끼, 죽어버려’라는 환청의 악몽에 상습적으로 쫓긴다(‘구인’). 우리가 겨우 다잡아 놓은 일상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틈의 누수로 인해 한순간에 허물어져버릴 수 있기도 하다(‘누수’)는 공포적 인식이 반복적으로 소설에 나온다. 등단작 ‘흰 콩떡’은 아버지의 방황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존재성을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해 세계에 맞서 분투하는, 비관을 넘어서려는 지향점을 작품들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집에는 단출하게 5편이 실렸는데 그중 단편이 4편이고, 나머지 1편은 5쪽의 짤막한 엽편이다. 그 엽편이 표제작이다. ‘파브리카’는 근대 해부학 창시자인 16세기 베살리우스의 책 이름이다. ‘제작’이란 뜻인데 그 엽편은 절망에 이른 한 여성이 인류의 개조를 위해 얼굴을 성형해준다는 실험팀을 만나 얼굴을 바꾼다는 판타지 ‘제작’적인 얘기다. 얼굴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의 태생과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거다. ‘도망갈 수 없어 번개탄을 사는’ 절망에서 벗어나고픈 몸부림이라는 거다.

작가는 경성대 국문과 석사를 졸업했으며 독립출판사 ‘네시오십분’을 운영 중이다. 새벽 그 시간에 글을 쓰는 그다. 그 시간이 ‘사회적 고통’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란다. 그는 2019년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으로 덴마크에 갔다 와서 이듬해 에세이집 〈덴마크 우핑 일기〉를 냈다. 등단 전부터 시작해서 그간 에세이집 3권을 냈다. 그는 “나는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싶나, 를 항상 질문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다. 젊은 작가의 건투를 바라는 것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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