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770~1801년 무슨 일이 있었나?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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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 정민

조선 후기 서학의 움직임 새롭게 해석
다산의 배교·이승훈의 문집 논쟁 눈길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는 조선 후기 서학의 안쪽을 ‘새롭게 해석하는’ 두꺼운 책이다. 한문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가 썼다. 책이 다루는 시기는 1770년대 중반 조선 천주교회 태동기부터 1801년 신유박해까지 30년으로 길지 않다. ‘서학이 조선 사회를 관통하면서 일으킨 지진은 생각보다 충격파가 컸다’는 것이 이 책의 입장인데 그 충격파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이다.


총론에서 보면 18세기 풍경은 뜨거웠다. 노론 집권층이 소중화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자부심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북학과 서학은 각각 새로운 시대 전망을 제시한다. 백성의 삶을 개선하는 실용을 내세운 것이 북학이었다면 서학은 전통 주자학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으로 새로운 세계를 그려나간다.

책의 각론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사실들이 많다. 다산 정약용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눈에 띈다. 다산은 조선에 정식 신부가 들어오기 전 가(假)성직제도 체제 아래 있었던 10인 신부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1795년 한국 교회 최초의 외국인(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밀고로 체포 위기에 놓였을 때 탈출시킨 장본인이었다는 거다. 그런 일을 저지른 후 의심과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그해 이존창을 검거한 인물이 정약용이었다고 한다. 이존창은 초기 교회를 다진 중요한 인물이었다.

정약용의 배교 언급은 대부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한다. 정약용은 ‘정약망이 누구냐’라는 심문을 받을 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우리 집안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고 한다. ‘약망’은 다산의 세례명인 ‘요한’을 말하는 것으로 ‘약망을 모른다’는 것은 자기 부정의 극치였다는 거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특히 지난해 윤지충과 권상연의 묘에서 발굴된 지석 사발의 글씨는 정약용이 썼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정약용이 배교한 뒤에도 신앙생활을 놓지 않고 있었다는 거다.

책에서는 논쟁적인 주장도 여럿이다. 이승훈은 정약용의 처남으로 1784년 조선인 최초로 중국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던 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승훈의 유일한 문집으로 알려진 〈만천유고〉는 가짜다. 이 문집은 이승훈의 글이 한 편도 없는, 20세기 초반에 짜깁기된 위서라는 거다. 현재 시복시성을 진행 중인 이승훈 관련 자료이기 때문에 명확한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밀양 단장과 충북 단양으로 위치 논란이 있었던 순교자 김범우의 묘에 대한 논쟁적인 주장도 실렸다. “어느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금한 진실을 밝힌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책은 통사는 아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모자이크 식으로 모은 것이다. 초기 교회사 30여 년을 12부로 구성해 각 8편, 총 96편의 글이 실렸는데 그야말로 방대하고 촘촘한 복원이 아닐 수 없다. 〈칠극〉, 성호학파, 초기 교회, 지방 교회, 주문모 신부와 강완숙, 황사영과 김건순 등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다. 책의 서술에서 예의 필력을 보이는 저자는 “살이 튀고 뼈를 바수던 시간들이 믿음으로 쌓여 증거가 되고 부끄럽지 않은 말씀이 되었다”고 그 30여 년을 해석한다. 정민 지음/김영사/904쪽/4만 4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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