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위기의 한·중 교역과 외교 관계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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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4’ 가입 여부·대중 무역수지 적자 탈피 ‘최대 현안’

지난 9일 중국 칭다오에서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마련된 양국 외교장관 회담(위)과 수출입 컨테이너 화물이 잔뜩 쌓여 있는 부산항 북항 컨테이너부두 모습. 외교부 제공·부산일보DB 지난 9일 중국 칭다오에서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마련된 양국 외교장관 회담(위)과 수출입 컨테이너 화물이 잔뜩 쌓여 있는 부산항 북항 컨테이너부두 모습. 외교부 제공·부산일보DB

오는 24일로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만 30년이 된다. 양국이 긴 세월에 걸쳐 우호를 다지는 동안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현실은 살얼음판이다. 오랜 동맹국 미국이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칩4’에 한국이 참여하는 데 중국이 반대하고 있어서다. 신냉전 구도를 만들며 세계 패권전쟁을 벌이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이 외교적인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의 무역수지가 1992년 수교 이후 30년 만에 3개월 연속 적자를 나타내 한국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대중(對中) 무역수지 적자를 탈피하고 성숙한 한·중 관계를 구축하려는 정부 대책이 절실하다.


■ 대중 무역수지 석 달째 적자

지난달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5억 75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 5월 10억 9900만 달러, 6월 12억 1400만 달러 적자에 이어 3개월째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 행보를 보인 것이다. 3개월 연속 대중 무역적자는 한·중 수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최근 한국 상품의 중국 수출이 감소한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달에도 대중 수출액은 132억 4000만 달러로, 지난해 7월 대비 2.5%가 줄었을 정도다.

대중 수출 감소는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도시 봉쇄에 나선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봉쇄 조치 영향으로 중국경제의 성장 둔화세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뛰어난 한국 반도체 제품의 중국 수출은 증가했으나, 이를 제외한 디스플레이와 자동차 부품, 철강, 석유화학 등 다른 주요 품목의 대중 수출이 대폭 감소한 것이 중국의 경기침체를 입증한다. 반면 중국으로부터 수입은 늘고 있어 무역적자 폭을 키운다. 지난달 대중 수입은 1년 전보다 19.9% 증가한 138억 1800만 달러였다.


■ 흔들리는 수출 전선의 심각성

대중 무역적자는 한국 수출 전선에 타격을 주고 전체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우리나라 최대의 수출 대상국인 까닭이다. 지난해 기준 대중 수출 비중은 전체의 25.3%(1629억 달러)로, 2위인 미국 14.9%(959억 달러)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이러한 대중 교역이 지난 30년간 흑자의 길을 걸으며 일본과 중동 등에서 생긴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메워 줬다. 중국이 우리 수출의 텃밭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그런데 줄곧 효자 노릇을 해 온 대중 수출이 흔들려 무역적자로 돌아서는 바람에 전체 무역수지는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적자 추세를 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이다. 게다가 지난 1~7월 누적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66년 만에 최대치인 150억 2500만 달러에 달할 만큼 대중 무역적자의 여파는 심상치 않다. 신속한 특단의 대처가 없으면 대중 무역적자는 계속될 전망이어서 수출로 먹고사는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수출 둔화와 수입 급증에 따른 무역적자의 지속은 국가 신인도 하락과 저성장·고물가 장기화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한국경제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게다.


■ 맞춤형 공략·시장 다변화 필요

중국의 성장세 둔화는 한국 수출이 그간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에 올라타 대규모 흑자라는 과실을 누렸던 호시절이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 지난달 30일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현상이 일시적이며 중국의 지속 성장이 가능할지라도 이젠 대중 교역의 기조 변화가 절실한 시점으로 보인다.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와 기술 발전 탓에 한국의 중간재 대중 수출이 크게 줄어드는 반면 중국으로부터 완제품 수입은 늘고 있어서다. 한국이 중국에 상대적 우위를 보였던 분야들에서 빠르게 따라잡히고 있어 무역적자가 더 커질 수도 있다.

따라서 흑자 상태인 반도체처럼 기술력과 품질, 가격 경쟁력 등의 우위 확보나 유지를 통해 중국을 공략할 필요성이 있다. 현지 상황에 맞는 수출품 다양화와 고부가가치 전략상품 개발을 추진하는 등 더욱 치밀하고 실효적인 수출전략 마련이 시급해졌다. 더불어 중국에 편중된 무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시장 다변화도 과제다. 중국은 2016년 한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한한령(한류 금지령)으로 발목을 잡았듯이 언제든 정치적 의도로 통상 보복에 나설 여지가 많다. 이럴 경우 한국의 수출입은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국익 위한 외교 뒷받침돼야

상존하는 중국발 리스크 해소가 필요한 시기에 때마침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려 관심을 끌었다. 9일 중국 칭다오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만났다. 윤석열 정부의 본격적인 대중 외교가 이제서야 이뤄져 늦은 감이 있으면서도 다행스럽다. 그러나 회담에서 우호 증진, 상호 존중 같은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에 그치고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못해 매우 아쉽다. 되레 양측은 지난 7일 한국이 칩4 동맹 예비회의 참여 의사를 밝힌 사실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며 확연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갈등이 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칩4는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는 마당에 안보 차원에서 한·미동맹을 돈독히 하고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칩4에 대한 중국의 반발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숙제는 한국 정부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칩4가 자국을 고립시키려는 동맹이라고 판단하는 중국에 한국의 사정과 입장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외교 노력이 요구된다. 칩4 가입 시 미국에게서 우리 국익을 보장받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칩4에서 대중 무역을 규제하거나 중국이 한국과의 교역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마땅하다. 한국 반도체의 중국·홍콩 수출 비중이 62.6%나 되는 지금 중국 시장을 잃으면 절대 안 된다.


■ 대등한 이웃 관계 정립할 때

칩4 문제의 원활한 해결조차 벅찬데 중국은 최근 한국에 기존의 사드 관련 ‘3불(不)’ 정책(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이행에 더해 배치된 사드의 운용 제한까지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까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나섰다. 한국에 더욱 난감한 국제정세가 펼쳐지고 있다. 동맹국 미국과 최대 교역국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가 불가피한 모양새다.

진퇴양난의 위기 국면일수록 득실을 잘 따져 국익을 챙기는 실리 외교가 정답이다. 다만, 중국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그간의 저자세를 지양하고, 높아진 국가 위상과 국력을 바탕으로 한 당당한 외교를 병행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앞으로 한국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미·중 양국의 상황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나 할 말을 다하면서 양국의 주문을 국익에 이로운 방향으로 적극 활용하자는 것이다. 한·중 관계에서 강조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 더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겨져야 할 때다. 대등함 속에서 상생과 동반 성장이 가능한 보다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만들려는 자세가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중국에 요구된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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