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문제는 원수(原水)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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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10년 만에 재연된 낙동강 ‘녹조라테’

‘강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충격 현장

어민들 조업 포기, 물에서 악취 진동

원수 엉망인데 정부 식수 안전만 강조

취수원 다변화 지자체간 물 싸움 조짐

깨끗한 원수 공급 정부가 책임져야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일상이 되고 있는 요즘이다. 유럽과 미국이 폭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는 동안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의 안데스 산맥에는 기록적 폭설이 내렸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앙은 한반도도 비켜갈 수 없어 입추도 지난 때늦은 장마에 수도권은 물에 잠기고 남부지방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뭄과 폭염으로 낙동강에는 녹조가 창궐해 강이 풀밭처럼 변했다. ‘녹조라테’의 귀환이다. 4대강 사업을 끝낸 2012년 여름, 낙동강은 녹조로 뒤덮이고 현장 조사에 나선 환경단체가 조류로 걸쭉해진 강물을 컵에 담아 보이면서 녹차라테에 빗댄 녹조라테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정부와 환경단체가 원인을 놓고 공방을 벌였지만 강은 흘러야 한다는 기본 상식을 생각하면 4대강 사업으로 8개의 보를 만들면서 가속화됐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낙동강 녹조와 수질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4대강 사업 후 더 심각해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 환경 재앙을 녹조라테라는 은유로 드라마틱하게 환기시켰을 뿐이다. 낙동강네트워크와 대한하천학회는 지난 4일 현장 조사에 나서 ‘강이 아프면, 사람이 아프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증언했다. 물고기는 썩어가고 녹조로 걸쭉해진 물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해당 단체가 앞서 지난 6월과 7월 낙동강 31개 지점 수질을 분석한 결과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미국 환경보호청 물놀이 기준의 최고 1075배 검출됐다.

문제는 이 물을 고도정수처리한 수돗물을 부산 시민들이 마시고 산다는 것이다. 말이 고도정수처리지 원수가 고도의 기술로 정화해야 마실 수 있을 만큼 고도로 나쁘다는 말이다. 낙동강 원수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환경부는 수돗물 검사 결과 먹는물 기준을 충족해 안전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10년 전 녹조라테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원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미국과 프랑스가 녹조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인간의 안전에 미칠 수 있는 기준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수도권 원수에 녹조라테와 같은 문제가 생겼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주 상수원인 팔당호는 BOD(생화학적산소요구량) 기준 1ppm 안팎의 1급수 수준을 유지한다. 2급수만 넘어서도 난리가 난다. 낙동강 원수는 기본이 2~3급수고 녹조가 창궐하는 여름이면 4급수로 전락한다. 올 여름 낙동강에서는 4급수 지표종인 깔따구 유충이 발견됐다. 현장 답사에 나선 교수들은 지금 낙동강 수질은 4급수보다 더 나쁜 6급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정책기본법은 정수해 식수로 사용하는 원수 기준을 1~2등급으로 규정하고 3등급은 고도정수처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의 근본 취지는 사람이 먹는물의 원수 수질은 1~2등급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 시민들은 법이 정한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원수가 안 좋은데 고도정수처리한들 인간의 몸에 좋을 리 없다. 정부가 먹는물 기준에 부합한다고 하지만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위해 물질이 한둘이 아니다. 부산 시민들이 전국 평균에 비해 암 발병률이 높고 기대수명이 낮은 이유가 물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다. 넓게 보면 낙동강에 기대 사는 영남의 1300만 주민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낙동강 녹조 사태로 대구의 수돗물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돼 시끄럽다. 낙동강 주변 벼와 채소에서도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고 있다. 낙동강 물 문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것은 정부 책임이다. 정부가 수자원을 공공재로 정해 놓고 정작 원수 확보와 관리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겼다. 부산처럼 자체적으로 깨끗한 원수를 확보할 수 없는 지자체는 경남 등에 손을 벌려야 한다. 부산시가 수 십 년에 걸쳐 진주 남강댐 물을 공급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경남도와 진주시의 반대로 무산됐고 갈등과 반목만 심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물관리가 환경부로 일원화되고 지난해 6월 환경부장관과 영남 5개 시도지사가 낙동강통합물관리방안에 합의해 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됐다. 이 방안은 합천의 황강 복류수와 창녕의 강변여과수로 부산의 취수원을 다변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는 등 행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나 핵심은 역시 지자체 간 갈등 조정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로 출범한 창녕군 의회와 합천군 의회가 최근 반대 입장을 공식화하고 나서 물 싸움이 재연될 조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물 문제를 지자체에 떠넘길 게 아니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해당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고 환경 보전 노력에 따른 보상을 실시하는 등 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 어디에 살든 깨끗한 물을 공급받는 것은 기본적 권리다.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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