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은행, 그들만의 리그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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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이용, 은행의 성과급 잔치
이자 부담에 서민들은 허리 휠 판
22일부터 예대금리차 공시 시작
철저한 관리로 국민에 이익 돼야
정치권도 잇따른 법 개정 움직임
은행도 사회의 공공재 인식 필요

최근 고금리 행진으로 인해 국내 은행들의 수익이 급증하고 있다. 반면 서민들은 고금리로 갈수록 이자 부담에 힘든 실정이다. 은행에 쌓여 있는 원화 뭉치. 부산일보DB 최근 고금리 행진으로 인해 국내 은행들의 수익이 급증하고 있다. 반면 서민들은 고금리로 갈수록 이자 부담에 힘든 실정이다. 은행에 쌓여 있는 원화 뭉치. 부산일보DB

먹고사는 게 힘들 때 넋두리처럼 나오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는 서민의 한숨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표현되는 요즘 경제 상황은 정말로 일상의 의식주 생활마저 극도로 움츠러들게 한다. 살아남으려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졸라매야 하는 지경이다.

그런데 모두가 추운 허허벌판에 서 있는 듯한 이 와중에도 햇볕 잘 드는 따뜻한 곳은 있는 것 같다. 바로 요즘 은행권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국내 은행들은 금리 상승으로 최고의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이 지난 2년 반 동안 임원들에게 지급한 성과급만 1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2020년 5월을 기점으로 고금리 기조로 전환되면서 갈수록 최고 수익을 경신 중이다. 이런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라고 하니, 서민들이 은행권의 성과급 잔치 소식을 듣는 일 역시 당장은 피할 길이 없지 싶다.


많은 성과급을 받는 은행원들이야 “계속 이대로”를 외치고 싶겠지만, 금리 인상 소식이 들릴 때마다 맥이 탁 풀리는 서민으로서는 하루하루 삶이 가시방석이다. 무엇보다 은행권의 성과급 잔치가 손쉬운 이자 장사로 인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 상황에선 더 가슴이 아리다. 남다른 경영 수완을 발휘해 이룬 성과가 아니라 남의 돈을 이용해 성과급 잔치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금과 대출 금리의 차이인 이른바 ‘예대금리 마진’과 가산 금리를 통한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이 은행 성과급 잔치의 기반이다.

성과급 잔치가 국민으로부터 은행권의 노력으로 인정돼 온전히 축하받지 못하는 이유다. 게다가 은행권은 고금리로 인해 서민들이 힘든 처지임을 알면서도 대출금리 인하 요구에 대해선 매우 인색하다. 손쉬운 이자 장사로 엄청난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도, 내부 통제 시스템은 엉성해 툭하면 직원 횡령 사건이 터지는 곳이 지금 은행권이다. 이러니 의심과 비판의 눈초리를 피하지 못한다.

오는 22일부터 시행되는 은행의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는 이런 은행권의 경직성에 대한 정부의 강제적인 대응이다. 금리 인상기를 맞아 대출 금리는 발 빠르게 올리면서도 예·적금 금리 인상에는 미온적이라는 들끓은 여론을 감안해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방안이다. 지금까지 3개월 단위로 공시되던 은행의 예대금리차가 이달부터는 1개월로 당겨져 비교 공시된다. 매달 은행 간 금리 순위가 매겨지는 만큼 금리 경쟁을 유도하면서 소비자들의 알 권리와 선택 권리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제도가 시행되는 만큼 정부는 철저한 관리를 통해 금융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2%포인트를 넘었던 예대금리차는 조금씩 감소세를 보인다는 분석도 있지만, 확실한 정착까지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예대금리차를 낮추기 위해 은행들이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가려 받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어쨌든 지금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은행의 예대금리차를 줄이는 데 금융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도 다르지 않다. 올해 전반기 국회가 종료된 이후 현재까지 대출금리와 관련된 은행법 개정안 발의 건수는 총 7건으로, 이 중 4건이 은행권의 성과급 잔치가 여론을 들썩이게 한 지난달 집중적으로 발의됐다. 대체로 금리 인상기 속 대출금리의 적절성을 금융 소비자들이 판단해 선택할 수 있도록 대출금리의 산정 구조를 공개하라는 내용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를 두고 영업 비밀을 공개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은행의 경우 진입이 규제되는 면허(免許)산업인 만큼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은행이 민간 기업이긴 해도, 사용하는 금융시스템은 공공재임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 외환위기 때 은행 파산을 막기 위해 수십조 원의 혈세가 공적 자금으로 투입된 배경이기도 하다. 민간 은행이 벌이는 이자 장사라도 공공성을 벗어나 이뤄질 수는 없다는 의미다. 정부의 최근 방침에 대체로 여론의 힘이 실리고 있는 것도 국민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권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요구로 더 여론과 멀어지는 듯한 모습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소비자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단축 근무 시간의 정상화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임금은 오히려 더 올려 달라고 하는 은행권에 대해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할지 헤아려야 한다. 은행은 이제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국민의 공공재라는 인식을 해야 할 때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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