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는 한족과 오랑캐의 역사 겹쳐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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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역사/김기협

세계의 단일한 중심은 없다. 중화도, 유럽도 오랑캐 역사와 겹쳐 중심과 변방의 경계를 허물면서 전개돼 왔다. 사진은 돈황의 한나라 망루 유적. 돌베개 제공 세계의 단일한 중심은 없다. 중화도, 유럽도 오랑캐 역사와 겹쳐 중심과 변방의 경계를 허물면서 전개돼 왔다. 사진은 돈황의 한나라 망루 유적. 돌베개 제공

〈오랑캐의 역사〉라는 제목이 뜻밖이다. 오랑캐는 결국 ‘탈중심주의’를 뜻하는 것이다. ‘뜻밖’에서 굉장한 ‘뜻’을 이야기식으로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부제는 ‘만리장성 밖에서 보는 중국사’인데 중국사를 중심과 변방, 한족과 오랑캐의 역사로 겹쳐 전도시켜 읽는다. 나아가 세계사를 뒤집어볼 수 있는 시각도 제시하고, 한국사에 대한 눈에 띄는 관점도 들어 있다.

한국사 관점과 관련해 한반도가 중국에 흡수되지 않은 이유는 ‘5호 16국 위진남북조’ 시대 때문이었다고 본다. 한나라 멸망 이후 수나라까지 370여 년간 중국은 5호 16국 위진남북조의 대혼란 시대였다. 그 할거 시대에 이른바 중화제국은 남중국 쪽으로 후퇴하고, 북중국 쪽은 오랑캐들의 각축장이 됐는데 북중국 바깥에 있었던 조선 지역은 중화제국의 압력에서 벗어나 독자적 발전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때 고구려가 한의 낙랑군과 대방군을 멸망시켰다. 오랑캐들의 각축이 방패막으로 작용했기에 한반도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5호16국 시대라고 복잡하게 말하지만 그 핵심은 선비족의 북위였다. 북위의 효문제(재위 471~499)가 33세에 죽지 않았다면 중국을 통일했을 거라고 한다. 그가 일찍 죽고 사분오열된 뒤 역시 선비족인 북주의 중심세력이 수·당의 지배세력이 되는데 요컨대 수나라 양씨, 당나라 이씨는 선비족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화된 선비족이 수·당을 세웠다는 말이다.


5호 16국 시대 핵심은 선비족의 북위

수·당 지배 세력 역시 선비족 가능성

중국사, 중심·변방 겹쳐… 경계도 유동적

한반도, 오랑캐 각축이 방패막이로 작용

중심과 변방은 겹쳐 있고, 그 경계는 유동적이다. 한나라(BC 202~AD 220)가 세워졌을 때 농경제국의 반작용으로 그림자 제국인 흉노 제국이 만들어졌다. 흉노는 대륙을 휘저으면서 유럽 쪽에 가서 훈제국을 세웠다. 수(581~619)·당(618~907) 시대도 마찬가지다. 돌궐과 위구르가 수·당에 흡수되기도 하고, 수·당이 흔들릴 때 돌궐 1·2제국과 위구르 제국을 건국하기도 했다. 송나라(960~1279) 때도 거란과 여진이 각각 요와 금 제국을 건국했다. 오랑캐라고 계보가 없는 게 아니다. 숙신-말갈-여진이 같은 계통이고, 동호-선비-거란이 한 종족이다. 이중 여진은 청나라를 세웠으니 현대 중국의 ‘아버지 오랑캐’다. 한화(漢化)가 됐다면 더 이상 오랑캐가 아니라고 할 것인가. 한화도 중심주의적 관점이다. 중심과 변방이 겹쳐 있는 것을 꿰뚫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유럽사도 매우 새롭게 본다. 유럽문명의 핵심은 로마제국의 지중해문명이다. 훈족의 충격에 의해 게르만이 남하해 395년 동·서로마가 분열됐을 때 유럽문명의 핵심은 동로마와 함께 동진했다. 서쪽에서는 오랑캐 게르만(프랑크인)이 로마제국의 껍데기를 넘겨받았다. 그러다가 오랑캐 프랑크인들이 지중해문명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러 나선 것이 14~16세기 르네상스였다는 것이다. 그전에 그들은 지중해문명의 변방에 불과했다고 한다.

유럽이 문명화되기 전에 진행된 대단한 문명 통합이 있었는데 그것은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문명을 통합한 7~8세기 이슬람혁명이다. 이런 이슬람문명과 중화문명의 더 큰 통합에 나선 것이 13세기 몽골제국이었다. 저자는 “몽골제국은 여러 문명권을 관통하는 세계화 통치 체제를 세웠다”고 말한다. 그점이 몽골제국의 근대성이라고 한다.

몽골제국은 초원뿐 아니라 바다 쪽으로도 진출한다. 원 세조 쿠빌라이는 남송을 정벌한 뒤 1280년대 바다를 통해 일본과 동남아시아 자바 정벌에 나섰던 것이다. 못 이룬 그 꿈을 계승한 것이 15세기 초 명 영락제의 정화 함대다. 세계사에서 해양의 시대가 열린 것은 몽골제국에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 흐름에 뒤늦게 뛰어든 것이 15세기 말 유럽 대항해시대였다고 한다. 해양의 시대가 열려 ‘초원 오랑캐’의 시대는 ‘바다 오랑캐(洋夷)’의 시대로 바뀌었다. 16세기 왜구가 등장했고, 정지룡 정성공이 패권을 휘둘렀고,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가 설쳤고, 뒤이어 일본이 준동했다. 바다 오랑캐 시대의 핵심은 무력이 아니라 재력이었고, 일본과 남아메리카 산 은에 의한 ‘은(銀)의 시대’였다. 그리고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20세기 제국주의 시대가 이어졌던 것이다. 국민국가를 단시일내에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일본의 ‘제국 식민지’ 만주국에 대한 저자의 관점도 읽어볼 만하다.

저자는 서양은 ‘열린 시스템’, 중국은 ‘닫힌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열린 시스템이 지구를 종횡하면서 이른바 ‘서구의 근대’를 직조했다. 저자는 “열린 시스템이 결국 역사에서 승리했나”라고 묻는다. 답은 부정적이다. “현재 전 지구적 기후·생태 위기는 ‘열린 시스템’ 때문”이라고 지목한다. 자기만족을 모르는 서양의 ‘열린 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탈근대, 탈중심 논의이며, 유럽 중심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다. 요컨대 중국 ‘닫힌 시스템’의 역사적 의의를 이제 성찰해 봐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김기협 지음/돌베개/487쪽/2만 5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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