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열여덟 어른'의 안부를 묻는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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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 잇단 죽음 사회 문제화
어른임을 강요당하며 사회에 던져져
기댈 곳 없는 막막함, 고립감에 시달려
경제적 지원만큼 정서적 도움도 중요
지속적인 맞춤형 솔루션 이뤄져야
자립 도울 편견 없는 사회 분위기 필요

보호종료아동들이 사회에 나와도 소외되지 않도록 좋은 선배와 어른이 절실히 필요하다. 보호종료아동 인식 개선을 위한 ‘땡큐 버스킹’을 진행 중인 조규환(23·왼쪽) 씨와 아름다운재단의 캠페인 ‘열여덟 어른’에 참가 중인 박한수(27·오른쪽 가운데) 씨. 아름다운재단 제공 보호종료아동들이 사회에 나와도 소외되지 않도록 좋은 선배와 어른이 절실히 필요하다. 보호종료아동 인식 개선을 위한 ‘땡큐 버스킹’을 진행 중인 조규환(23·왼쪽) 씨와 아름다운재단의 캠페인 ‘열여덟 어른’에 참가 중인 박한수(27·오른쪽 가운데) 씨. 아름다운재단 제공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예삿일은 아니다.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그 심정을 가늠하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 감당할 수 없는 고통, 도움을 청하고 기댈 곳 하나 없다는 고립감 등으로 추정할 뿐이다.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없지만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청년들의 소식은 늘 마음 한구석을 먹먹하게 한다. 최근 보육원을 퇴소해 자립에 나선 만 18세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두 명이 며칠 간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회복지사를 꿈꿨던 대학 새내기 A 군은 기숙사 책상 위에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는 짧은 문장을 남겼다. 대학 중퇴 후 장애인 아버지와 함께 살던 B 양은 ‘그간의 삶이 고달팠다’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설명했다.


이들의 죽음과 관련해 27세 자립준비청년은 한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를 들려준다. 2015년 보육원을 퇴소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던 친구 두 명이 두 달 간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구를 다시 볼 수 없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첫 번째 감정이 슬픔이 아니라 안도였다는 것이다. ‘친구야 지옥 같은 삶을 너는 용기 있게 끊어 냈구나. 이젠 편안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까지 고생한 친구를 꼭 안아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지만 열여덟에 사회로부터 어른임을 강요당한 이들이 매일매일 새로운 자립을 견디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보육원), 공동생활 가정, 가정위탁의 보호를 받다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돼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을 이른다. 지자체에 따라 500만 원~1500만 원의 자립 정착금과 5년간 매달 40만 원의 자립 수당이 지원된다. 아동보호법이 개정돼 보호기간도 원하면 만 18세에서 만 24세로 연장할 수 있다.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은 조금씩 늘고 있다.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용어도 당사자들을 불쌍한 존재로 대상화한다는 지적에 따라 자립준비청년으로 바꿨다. 이번에도 두 청년의 죽음은 자립준비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관계 부처에 “국가가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자립준비청년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모의 심정으로 챙겨 달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보건복지부가 자립 수당 인상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5만 원~10만 원 올린다고 자립준비청년 문제가 해결될까.

자립준비청년 홀로서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은 자립준비청년을 북극에 살던 북극곰이 사막에 가서 살게 되는 것에 비유했다. 그만큼 힘겹다는 것인데 심지어 한국은 부모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사회 초년생들도 주거와 고용 불안으로 서른이 넘어도 부모의 집에서 캥거루족으로 사는 게 현실이다. ‘부모와 자녀로 이뤄져야 정상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부모 없는 10대가 제대로 성장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고아’는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웃으며 이겨 내는 ‘캔디’거나 이유 없이 악행을 일삼는 ‘악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무엇보다 세심한 정책이 요구되는 것은 이들이 심리적으로 더 취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보호아동의 발생 원인은 학대가 가장 높고 부모의 질병, 사망, 이혼, 빈곤, 유기 등인데 최근에는 학대의 비율이 더 커지는 추세다. 이 같은 환경적 영향으로 보호아동의 약 70%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학습장애 등 치료가 필요한 심리·정서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경계선 지능장애가 자립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이 관찰된다. 자립준비청년 둘 중 한 명은 자살 생각 경험이 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보호아동의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자립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정부가 전국 15곳에 설치한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수와 전문 인력을 대폭 늘려 자립준비청년 맞춤형 솔루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보육시설에서 자란 사실을 털어놓아도 아무렇지 않게 대해 줄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을 고립으로부터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줄 당사자 커뮤니티가 더 많아져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호아동을 만들어 낸 건 바로 우리 어른들이다. 이들의 사회 진출이 더 이상 고립이 아니라 진정한 자립이 되고 홀로서기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온 사회가 온 힘을 다해 도와야 한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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