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재송동 화재는 인재, 참사 더 이상 없기를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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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사회부 경찰팀장

새벽 4시께 잠결에 사이렌 소리가 크게 들려 화들짝 깼다. 화재가 발생했으니 비상계단으로 대피하라는 방송도 나온다. 창문과 현관문을 열어보니 연기는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아파트 다른 동에서도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또 잘못 울린 거구나’ 생각하고 이내 잠을 청한다.

아파트 거주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화재감지기 오작동 사례다. 화재감지기 오작동으로 인한 화재경보는 실제 화재 상황에서 우리를 지켜줄 소방시설에 대한 불신을 키우며 안전 의식을 한없이 무뎌지게 했다.

화재감지기 오작동과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과 묘하게 닮았다. 오작동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고, 화재경보가 울려도 ‘거짓이겠거니’ 대피하지 않는 사람들은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동네 어른들과 같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한다. 전국 아파트 곳곳에서 ‘양치기 소년’ 이야기와 같은 일이 숱하게 일어난다. 화재경보가 울리면 입주민들은 ‘또 오작동이겠거니’ 하고, 아파트 방재 담당자들은 화재경보기를 꺼버리기 일쑤이다. 하지만 실제 불이 나면 화재 대피와 대응의 ‘골든 타임’이 허비되고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올 6월 27일 새벽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의 한 고층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파트 방재 담당자는 한 세대에서 화재감지기 오작동이 발생하자 이를 조치하는 과정에서 화재경보가 계속 울리거나, 다시 울릴 것을 우려해 아파트 전체 화재경보기를 껐다. 그새 다른 동의 한 세대에서 진짜 불이 났다. 화재감지기는 작동했지만 화재경보기는 울리지 않았다. 잠들어 있던 가족 3명은 미처 대피하지 못해 숨졌다.

화재경보기 임의 정지로 발생한 대형 참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경기도 이천시 쿠팡 물류창고 화재, 남양주시 주상복합건물 화재도 그랬다. 화재경보기 임의 정지로 대형 화재가 잇따르자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매년 아파트와 상가를 대상으로 소방시설 특별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 점검에서 화재경보기 등 소방시설 임의 폐쇄·차단이 10건이나 적발됐다고 하니, 생명을 지켜줄 소방시설이 우리 주변에서도 쿨쿨 잠만 자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소방시설 임의 정지로 발생하는 대형 화재는 소방시설의 잦은 오작동과 노후화, 방재 인력 부족, 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의 저가 소방시설로 구색만 맞추려는 안전 의식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화재경보기 임의 정지 이후 화재 안전의 빈틈이 너무나 크기에 무엇보다 방재 담당자들은 소방시설 임의 정지 행위에 대한 책임과 주의에 소홀해선 안 된다.

이번 재송동 화재 참사를 계기로 국회에서도 화재경보기 임의 정지 행위에 대한 책임과 안전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새 법안은 소방시설을 점검·정비 목적으로 임시 정지할 때 반드시 화재 안전 확보를 위한 행동 지침을 의무적으로 마련하도록 했다고 하니, 앞으로 화재경보기 임의 정지 행위에 대한 책임·안전 의식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권 내 공감대가 높아진 때인 만큼 촘촘한 안전망이 구축되도록 법안이 통과되고, 후속 제도 개편도 조속히 뒤따르길 바란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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