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탐정코남] # 36. 방화복 입고 엘시티 101층 올라가 봤습니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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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초고층 건물이 많은 부산. 높이 200m가 넘는 건물 꼭대기 층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될까? 화재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고. 비상식적인 상황이지만 스프링클러 또한 작동을 멈춘다면? 점차 거세지는 불길에 사람이 갇혀 있는 급박한 상황. 믿을 건 소방관의 두 다리뿐이다. 부산에서 전국 소방관을 대상으로 엘시티 계단오르기 대회가 열렸다. 무려 101층을 20kg이 넘는 방화복과 진화장비를 착용한 채 계단으로 걸어 오르는 대회다.

전국에서 소방관 600여 명이 모인다기에 맹탐정도 대회에 참가했다. 겁도 없이 방화복을 입고 도전하겠다고 했다. 완주는 할 수 있을지? 101층 엘시티 계단 오르기에 도전했다.


101층을 올라가자

'계단 오르기'는 건강에 참 좋은 운동이다.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엄격한 훈련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올라야 할 건물이 101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간단한 운동이 아니다. '도전'인 셈이다.

지난달 26일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앞은 전국에서 모인 소방관으로 가득했다. '전국소방공무원 엘시티 계단 오르기 대회'가 열려서다. 맹탐정도 비경쟁 부문인 '언론인 특별참가' 자격으로 대회에 겁 없이 도전했다. 다만 걱정이 앞섰다. 입고 있는 옷이 운동복이 아닌 '방화복'이기 때문이다. 소방관이 현장에서 입는, 불길에도 끄떡없는 두꺼운 옷. 당연히 통풍이라는 개념이 없다. 10월 말 선선한 가을 날씨였지만,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흘렀다.

높이 411.6m, 101층 '엘시티 랜드마크동' 입구 앞에 섰다.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중간쯤 올라가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할 수 있을까?' '아침 먹고 올 걸, 아니 토하면 안 되니까 안 먹는 게 나으려나'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온 사방이 계단

소방관들의 도전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언론인 특별참가 팀이 먼저 출발했다. 평소 유산소 운동은 되도록 멀리하는 편이다. 6층 정도 올랐을까? 당연히 숨이 막혔다. 체력 관리에 소홀했던 그간의 날들을 반성하기보다, 아직 95층이 남았다는 사실에 더 힘들었다. 갑작스러운 운동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흘렀다. 호흡은 거칠어졌고, 같이 간 젊은 PD와 더 젊은 대학생 인턴은 그런 맹탐정을 불쌍하게 쳐다봤다. 십 년만 더 젊었어도 10층 정도는 숨도 안 가빴을 텐데.

엘시티 빌딩을 계단으로 오르긴 처음이다.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엘시티 계단에는 창문이 없다. 보이는 건 온통 시멘트벽과 계단뿐이다. 해운대해수욕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까? 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올라가는 상상을 했을까? 바닷바람이 불면 좀 덜 힘들 텐데.

뛸 생각은 1도 하지 않은 채, 10층 정도를 올랐을까? 밑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오는 무리가 보였다. 소방관이다. 일행보다 훨씬 늦게 출발했지만, 어느새 우리를 추월할 만큼 달려 온 것이다. 실제로 뛰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평지를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였다.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기 위해 길을 내줬다.


강철 체력의 소방관

엘시티 랜드마크동에는 20·48·76·97층 등 총 4개의 피난안전구역이 설치되어 있다. 초고층 건축물 화재 시 외부 소방력에 의한 소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건물을 뒤덮고 있는 통유리와 초고층 건물 위층과 아래층의 기압과 온도 차로 인한 굴뚝 효과로 한번 불이 나면 상부로 빠르게 불길이 번진다. 피난안전구역은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대피하는 곳이다. 급수전과 긴급 연락을 위한 통신시설 등이 설치돼있다.

계단오르기 대회 중간 쉼터 역시 피난안전구역에 마련되어 있다. 48층에서 물을 마시며 가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미 소방관들은 먼저 출발한 특별 참가 인원을 거의 다 추월해 오르고 있었다. 방화복만 입은 우리와 달리, 소방관들은 '풀세트'에 가깝게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헬멧을 쓴 채 방독면을 목에 걸고, 등에는 커다란 산소통을 매고 있다. 손에는 진압 장갑을 끼고, 신발은 운동화 대신 특수 고무로 된 안전화를 신고 있다. 실제 출동 시에는 호스나, 도끼 등 화재진압 장비도 가져간다고 하니 그들의 체력이 존경스러웠다.


이벤트 아닌 훈련

물론 중간중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소방관도 눈에 보였다. 이들도 사람이구나. 체력이 한계에 달한 듯 구석에서 머리를 박고 쉬는 사람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발걸음을 돌려 다시 계단을 올랐다. 부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 계단을 오르는 '이벤트'일 뿐이지만. 참가하는 소방관들은 진지했다. 실제 상황을 가정해 훈련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맹탐정을 추월해 올라가는 소방관이 있을 때마다 '화이팅'을 외쳤다.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참가한 맹탐정도 진지해졌다. 소방관보다 빨리 올라갈 수는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그들의 훈련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될 뿐이다. 페이스를 조절하며 한층 한층 계단을 올랐다. 70층을 넘고. 80층, 그리고 마침내 101층에 도달했다. 101층 전망대 한쪽에 결승선이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 골을 앞두고 속도를 내어 통과했다. 기록은 보잘것없는 38분 56초. 30분 안에 도착하는 게 목표였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부상으로 기념 메달을 받았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소방관은 670명.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완주했다.


체력보다 대단한 사명감

"오히려 대회라서 더 힘들었습니다. 만약 실제 상황이었다면, 힘든 줄도 모르고 올라갔을 텐데… "

소방관에게 대회 참가 소감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사명감 넘치는 그의 말에 언제 가장 힘들었냐고 다시 물었다. 김해동부경찰서 김정호 소방관은 "김해는 그렇게 고층 아파트가 많지 않다"며 "맨날 연습하던 20층까지는 수월했는데, 3~4배 정도 되는 계단이 계속 이어지니까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대회라는 부담감 때문에 시작부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101층 계단을 23분 48초에 주파한 '강철 체력'의 소방관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이번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청주동부소방서 윤바울 소방관은 "101층을 뛰어본 적이 없어 1등을 할지는 몰랐다"며 "한층 만 더 올라가자, 5층만 더 올라가자 이런 마음으로 계속 오르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상황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마음 편하게 제 체력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결말>

소방관들의 체력은 대단했다. 잠시 멈춰 쉴지언정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20kg이 넘는 화재 진압장비를 착용하고 맨몸으로도 올라가기 힘든 계단을 뚜벅뚜벅 올라갔다.

체력보다 더 대단한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사명감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로 그들은 계단을 올랐다. 체험을 위해 빌려 입은 새 방화복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반면 소방관들의 방화복은 하나같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화마 속에서 구했을까?

하지만 강인해 보이는 그들도 결국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2021년 전국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5.7% 3093명의 소방관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또 22.8%는 수면장애를 호소하고 있다고 조사됐다.

자신을 희생해 남을 살리는, 소방관의 처우 개선에 더 많은 지원과 노력이 필요할 때다. 그들의 헌신이 없다면, 안전한 대한민국도 없다.

제작=남형욱 기자, 정윤혁 PD, 이지민 에디터, 한승규 대학생인턴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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