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실패한 덕후’와 헤어질 결심해야죠”
영화 ‘성덕’ 오세연 감독 북토크
필름 에세이 <성덕일기> 출간
가수 ‘탈덕기’ 영화 뒷이야기
삭제 부분, 관객 대화도 담아
“못다 한 부분 쓸 수 있는 기회”
실패한 덕후가 성공했다. 덕질을 망친 그에게 팬이 생겼다. 열렬히 응원했던 그 ‘오빠’가 감옥에 갔지만, 단순한 원망으로 끝내지 않은 덕이다. 자신을 포함해 상처받고 실망한 팬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세상에 알렸다.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지 못한 이들은 격하게 공감했다.
그 덕후가 이번에는 ‘필름 에세이’로 돌아왔다. 26일 오후 4시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4층 라이브러리. 영화 ‘성덕’을 연출한 오세연(23) 감독은 필름 에세이 <성덕일기>로 ‘북토크(book talk)’를 시작했다. 오 감독은 “오늘은 원맨쇼를 하는 날”이라며 “지루하면 살짝 하품해달라”고 농담부터 던졌다. 그는 이어 “고등학생 때 영화의전당을 찾아 대본과 영화를 봤다”며 “아카데미 수업을 듣기도 한 곳에서 북 토크를 할 수 있어 신기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성덕일기>는 영화로 풀지 못한 감정과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담아낸 책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 중인 오 감독은 지난해 ‘성덕’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영화에는 중학생 때부터 가수 정준영을 좋아하며 나름 ‘성덕’이라고 자부한 오 감독이 성범죄에 연루된 ‘오빠’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탈덕하는 과정이 담겼다. 다른 가수들에게 분노한 팬들의 이야기까지 담아내며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각종 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극장 개봉 2주 만에 관객 1만 명을 동원하기도 했다.
책 <성덕일기> 1부는 다큐멘터리 ‘성덕’을 제작하고 상영하는 과정에서 쓴 촬영계획서, 일기, 메모 등으로 시작한다. 오 감독은 “일기는 대부분 밤에 쓴 거라 부끄럽다”며 “일기를 보고 울었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인터넷 소설 여자주인공 대사 느낌이라 많이 오글거린다”고 웃었다. 책 2부에는 영화에서 삭제된 내용을 더한 오 감독 어머니, 친구들과의 인터뷰, 3부에는 관객에게 받은 질문을 정리해서 대답하는 내용을 담았다.
오 감독은 최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성덕일기>에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를 보고 솔직하다는 평을 많이 남겨주셨는데 그렇게까지 솔직했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보다 진실처럼 느껴지지만, 조각난 사실을 재배치하고 편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필요에 의해 사라진 장면도 있고, 영화에 등장한 게 나의 총체적인 감정이라 하긴 어려웠다”며 “에세이를 쓰면서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 쓸 수 있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여러 질문에 답하던 오 감독은 자연스레 고향인 부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 본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부산시민회관 쪽에서 본 ‘유령 신부’였다”며 “어릴 때 엄마가 언니랑 저를 극장에 넣어놓고 어딜 가셨는데 아마 쉬고 싶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오 감독은 또 “예전엔 세상에 감독은 봉준호, 박찬욱 2명만 있는 줄 알았다”며 “고등학생 때 부산국제영화제와 영화의전당 덕에 독립영화라는 세계를 알게 됐고, 덕질하듯 영화에 빠져버렸다”고 설명했다.
오 감독은 ‘성덕’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영화지만, 책 <성덕일기>까지 낸 만큼 헤어질 준비를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저를 누군가의 팬이 아니라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창작자로 보시는 분들이 계셨다”며 “다음 영화를 찍으려면 이제 성덕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내년부터는 성덕과 함께하는 시간을 줄이고 과거에 두려 한다”며 “성덕 때문에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있지만, 그래야 다음 작품을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