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류성룡의 달력
조선 왕조에 등용된 많은 정승 중에서 걸출한 두 사람을 꼽는다면 초기에는 방촌 황희, 중기에는 서애 류성룡을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황희 정승’, ‘서애 대감’으로 각각 불리며, 지금 대중에게도 친숙한 재상들이다.
특히 조선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던 임진왜란 시기 국난 극복의 최일선에 있었던 서애는 우리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의 친분으로도 또한 유명하다. 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 마지막 장면도 서애가 임란 이후 지은 〈징비록〉에 이를 남기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임진왜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몸소 겪은 서애의 기록으로 인해 후손들은 비교적 세세히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서애 개인에 대한 실록 기록에는 다소 좋지 않은 평도 있어 흥미롭다. ‘임금의 신임을 얻은 것이 오래였지만, 직간(直諫)했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실제로 충무공이 탄핵당했을 때 당시 분위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충무공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실록에는 선조가 충무공에 관해 묻는 말에 대해 서애가 ‘오랫동안 한산에 머물면서 별로 하는 일이 없었다’라고 답하는 장면도 보인다. 아마도 위기에 처한 충무공을 위한 고육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뜻 보면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애는 끝까지 충무공을 신뢰하고 아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이 일본에서 환수해 지난 24일 일반에 공개한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를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달력에 해당하는 책력(冊曆)에 개인 일정이나 감상 등을 기록해 ‘류성룡의 달력’으로 불리는 이 비망기 표지에 서애는 다시 충무공의 최후 장면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충무공이 날아 오는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도 전장을 진두지휘하자, 부장들이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 아아!” 징비록의 언급과 유사하지만, 더 생동감 있고 감동적이다.
서애가 203일에 걸쳐 기록한 이 비망기에는 이외에도 술 제조법, 개인 약속 등 당대 상황을 알 수 있는 내용도 다수 있다고 한다. 역사적인 인물의 일상 기록이라서 그런지 감흥이 더 새롭다. 그나저나 달력 얘기가 나오니, 한 장 남은 올해 달력에 눈길이 저절로 간다. 벌써 연말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