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기의 순간 빛나는 인문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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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란 인문무크지 아크 편집장

학습된 AI가 인간이 무엇인지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9월 28일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K-ICT Week in BUSAN 2022’에서 관람객들이 스마트 접객용 안내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61@ 학습된 AI가 인간이 무엇인지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9월 28일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K-ICT Week in BUSAN 2022’에서 관람객들이 스마트 접객용 안내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61@

어릴 적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행복하냐고 내게 물었다. 행복이라니, 흔하게 소비되지만 일상에서 생각지 못한 단어에 잠시 당황했다. 며칠 전 아끼는 후배도 ‘선배님은 요새 행복하십니까’라는 톡을 보내왔다.

그냥, ‘나쁘지 않아’라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는 ‘왜, 요즘 행복하지 않나? 그렇다고 불행한 건 아니제?’라고 덧붙였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냐고 묻지 않는다.

잇단 대형 참사, 자살률 1위 오명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 하나…

인문학적 사유 없이는 행복 요원

줄 세우기식 교육시스템 재고

정답 아닌 스스로만의 해답 찾아야

자고 나면 새로운 사건이 신문과 방송을 도배한다. 대통령이 2032년에는 달에 착륙해 자원 채굴을 하고 2045년에는 우리 힘으로 화성에 착륙하겠다는 ‘미래 우주 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는 시대에 생활고로 인한 극단적 선택은 갈수록 늘어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은 8년이 지나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4차 산업혁명이 가파르게 진행되니 인간의 삶은 더 나아져야 하는데 부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져 간다. 나만 나쁘지 않다고 괜찮은 건 아니다.

대한민국은 2016, 2017년을 제외하고 2003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2011년 국내 자살은 정점을 찍은 후 조금씩 감소되고 있다지만 10대와 20대의 자살률은 급증하고 있다. 2020년 대비 2021년의 자살률이 10대는 10.1%, 20대는 8.5%가 증가했는데 2017년과 비교하면 50%가량 늘었다고 한다. 10대와 20대에 인생을 버리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은 아직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근대교육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등 관료 양성에 목적을 둔 줄 세우기식 교육은 ‘왜’라는 근본적 질문 없이 정답만을 요구한다.

청년 세대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어른들이 답을 정해 놓은 세계는 미래의 희망을 꿈꾸기에는 척박하고 암울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삶의 근본적 질문 자체를 할 수 없는 시스템은 인문학의 필요성을 묻지 않는 사회로, 고등교육에서조차 인문학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인문학적 사유 없이 이루어지는 학문의 발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 명과 암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는 여실히 보여 주었다. 화학자였던 그는 인류의 식량을 많이 보급하게 하는 인공 질소 비료를 개발해 인류의 염원이었던 식량 생산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이후 질소를 이용해 역사상 가장 사악한 무기인 독가스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독가스는 홀로코스트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이 인간이라는 것은 홀로코스트 이후 지구 곳곳에서 끝나지 않는 전쟁을 보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현대는 인간조차도 소비하는 사회가 되었다.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인 노동의 개념도 재정립해야 한다. 영국의 최고 지성으로 불리는 찰스 핸디는 AI가 인간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는 미래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AI를 보조하는 개인보좌관(Individual Assistant; IA)이 될 거라고 한다. 이런 세상이 온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데 아직도 우리는 기존의 ‘산업 역군’을 길러 내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학습된 AI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마저도 친절하게 해 주는 세상에서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스스로만의 해답을 찾도록 하는 사유의 힘을 길러 주는 것이 교육의 지향점일 것이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상가는 수천 년 동안 같은 질문을 하고 다른 답변을 했다. 인생은 선택의 문제인데 다양한 선택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선택의 틀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느린 것 같지만 위기의 순간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 가진 힘이다.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질문을 하지 않는 것, 해답이 없다는 이유로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 질문을 생각하는 데에 있어 틀린 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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