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째 방치된 옛 부산외대 부지, 슬럼화에 주민 고통 장기화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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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우암동 부산외대 터 개발 미뤄져
3월 ‘게임산업 거점 개발’ 발표 후 무소식
부산시 “게임 업체 유치 단계 아니야”
부지 슬럼화로 인해 주민들 피해 가중


9년째 방치 중인 부산 남구 옛 부산외대 부지가 흉물화되고 있다. 기약 없이 미뤄지는 개발사업으로 인한 슬럼화가 우려되면서 주변 주민과 상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1일 오후 찾은 남구 우암동 옛 부산외대 공터 부지엔 무성히 자란 넝쿨 사이로 높은 시계탑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2시 15분에 멈춰 있는 시계탑 바늘은 옛 부산외대 부지의 현실을 가리키는 듯했다.

부지 내 건물들은 낙엽으로 가려져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찾는 이가 없다 보니 건물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져 있고, 건물 외벽은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손을 대 보면, 기다렸다는 듯 벗겨진 페인트가 우수수 떨어진다. 학생들이 앉아있던 벤치 주변으로 넝쿨이 얼기설기 자라 있다. 철제로 된 계단과 난간엔 붉은 눈물을 흘리듯 녹이 슬었다. 동아리 이름이 적힌 창문은 깨진 채 외풍을 무방비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외대는 2014년 우암동에서 금정구 남산동으로 새 둥지를 틀었다. 캠퍼스 이전 뒤 부산시는 13만㎡ 규모의 해당 부지를 ‘공영 개발’하려 했지만, 민간사업자에게 땅이 팔리면서 무산됐다. 용도변경 등 허가권을 쥔 부산시는 올 3월 ‘게임산업 거점지역’으로 만들겠다며 이곳을 공공기여 협상 대상에 포함했다. 민간에 개발 방향을 제시한 것이나 이후 아무런 진척이 없다.


옛 부산외대 부지의 학생 쉼터가 넝쿨로 뒤덮여 있다. 옛 부산외대 부지의 학생 쉼터가 넝쿨로 뒤덮여 있다.

부산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발 사업 제안서가 접수돼야만 검토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데, 아직 민간 사업자가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산시 시설계획과 관계자는 “게임 업체 유치는 토지소유주인 사업시행자의 몫”이라며 “게임 사업과 관련해서는 민간 사업자에게 문의하라”고 말했다. ‘게임 산업’이라는 방향을 제시했지만 실제 기업 유치는 부산시의 일이 아니라는 입장인 것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부지 개발이 표류하면서 주민들의 고충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부산외대 부지 인근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교사 성 모(41) 씨는 “밤에 쓰레기를 몰래 투기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밤만 되면 고요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들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가장 속이 타는 이들은 주변 상인들이다. 부산외대 덕에 북적였던 활기찬 상권은 캠퍼스 이전 뒤 주저앉았고, 이제는 이 부지가 흉물처럼 되면서 오히려 상권을 저해하고 있다. 한때 게임산업 거점 개발 이야기가 나오며 기대를 품었는데,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인근 기사식당 주인 구채연(60) 씨는 “확실히 유동 인구가 줄어든 것은 굳이 말 안 해도 당연한 것 아니겠냐”며 “다시 부지를 개발한다길래 코로나로 입은 피해를 좀 회복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현재 외대 부지는 민간개발업체에서 고용한 경비원이 한 명씩 교대 근무를 서며 지키고 있다. 그러나 13만㎡ 규모의 넓은 외대 부지를 다 경비하기엔 역부족이다. 경비반장 윤종남(63) 씨는 “내부까지 다 관리할 수는 없어 주로 차량과 외부인 통제를 위주로 한다”며 “동네 주민이 아닌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긴 하지만 밤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고 호소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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