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서 뛰어도 세계가 알아본 ‘부산스러운 밴드’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2.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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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2. 부산 인디음악과 공연장

트렌드 쫓는 서울과 달리 개성 있는 음악으로 명성
한국대중음악상 이름 올리고 외국서 먼저 제안도
장르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책에 밴드 성장 한계
라이브클럽은 음료 판매 이유로 문화공간서 배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KT&G상상마당부산의 루프톱 공연, 오방가르드에서 열린 보수동쿨러 공연, ‘부산스러운 라이브’에 올라온 헤서웨이 영상. 각 기관 제공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KT&G상상마당부산의 루프톱 공연, 오방가르드에서 열린 보수동쿨러 공연, ‘부산스러운 라이브’에 올라온 헤서웨이 영상. 각 기관 제공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부산의 인디밴드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달리며 메달을 따는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지만, 한국을 넘어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밴드도 등장하고 있다. 음악성으로만 평가하며 ‘한국판 그래미상’으로 불리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부산밴드 ‘소음발광’은 올해 주요 부문 2관왕을 차지했다. 소음발광의 멤버 강동수는 “부산 인디 씬은 작지만 반짝인다. 사라졌다고 여기는 가치와 낭만이 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이 낭만과 가치를 나누고 싶다”라고 수상 소감을 남겼다. 부산 인디뮤지션들은 중앙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정작 지역에선 그 진가를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인디 성지, 홍대를 넘은 부산 뮤지션들

올 3월에 열렸던 제19회 한국 대중음악상 주요 부문 후보에 부산에서 활동 중인 밴드 3팀이 올랐다. 브릿팝의 감성을 가진 밴드 ‘검은 잎들’은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에 첫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책이여, 안녕!’을 올렸고, 최우수 모던록 앨범 부문은 ‘보수동 쿨러’가 첫 번째 정규앨범 ‘모래’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보수동쿨러는 2017년 결성돼 이듬해 싱글 앨범 ‘죽여줘’를 발매했다. 독특한 음색의 보컬, 솔직한 가사가 매력적이며 인디 음악계의 신예를 소개하는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출연했다.

두 번째 정규 앨범 ‘기쁨, 꽃’과 최우수 록 노래 ‘춤’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2개의 트로피를 쥔 소음발광은 2016년에 결성된 부산 밴드이다. 이름 그대로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선보이며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의 인디 뮤지션 중 현재 가장 대중에게 유명한 밴드는 ‘세이수미’이다. 2012년 결성돼 줄곧 활동했지만 정작 이들의 진가를 알아본 건 외국 레이블이었다. 2017년 영국 레이블 댐나블리가 세이수미의 공연을 보고 반해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외국에서 음반 발매와 현지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도 세이수미는 한국과 유럽, 북미 온라인 콘서트를 성공리에 끝냈고 해외 투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7년 부산에서 결성된 ‘더 바스타즈’는 2018년 500여 팀이 출전한 뮤지션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래퍼 스쿨보이큐와 합동 공연했다.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는 EBS 스페이스공감 ‘올해의 헬로 루키’에 지역 참가자로 처음 선정됐고, 독보적인 감성의 인디팝 밴드 ‘헤서웨이’, 구수한 그루브가 인상적인 ‘아이씨밴드’, 국악과 밴드의 흥을 모두 즐기는 ‘루츠리딤’, 1960년대 로커빌리를 구사하는 밴드 ‘하퍼스’, 얼터너티브 록밴드 ‘더 튜나스’, 팝펑크 밴드인 ‘밴드 기린’, 하드록 밴드 ‘시너가렛’,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다는 밴드 ‘폴립’ 등이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상인디스테이션의 송봉근 씨는 “서울은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인기를 얻기 위해 트렌드를 쫓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산은 뮤지션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어 개성적인 음악이 탄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인디 음악과 밴드 공연을 만나는 주요 무대가 라이브클럽이다. 부산의 인디 밴드와 뮤지션들 역시 지난 20여 년간 라이브 클럽에서 팬들을 만났다. 지역의 인디 뮤지션들을 키웠던 이 공간들은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며 많이 사라졌다.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는 서울 홍대 라이브 클럽을 살리기 위한 구호였고 동시에 부산의 대표 라이브클럽 중 하나였던 ‘15피트언더’가 문 닫기 전 걸었던 문구이기도 하다.

올해 부산에서 매주 기획 공연을 올리는 라이브클럽은 경성대 근처 오방가르드가 유일하다. 2018년 시작해 코로나 시국에서도 방역 수칙을 지키며 꿋꿋하게 공연을 이어왔다. 힙합공연과 디제잉쇼, 미술 창작 스튜디오를 겸하는 경성대 근처 라이브클럽 노드는 20대 초반의 예술가들이 모이며 부산에서 가장 젊은 예술가들이 뭉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부산대 근처 무몽크와 인터플레이클럽, 경성대 근처 바이널언더그라운드에서도 인디 뮤지션 공연이 부정기적으로 열리며 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사상인디스테이션도 부산 뮤지션들을 지원하는 무대를 올리고 있다.

KT&G상상마당부산은 오방가르드와 더불어 부산에서 가장 많은 인디 뮤지션 공연이 펼쳐지는 장이다. 기획 공연 외에도 부산음악창작소와 협업으로 지역아티스트 지원 공연을 진행하며 실외 버스킹존, 옥상 루프톱 콘서트 등 3개의 공연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라이브클럽은 지역의 뮤지션을 키우고 인디 공연을 펼치는 공연장이지만, 안타깝게도 문화공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음료를 팔기 위해서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해야 하며 이런 이유로 문화공간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고 있다.

오방가르드만 해도 한해 100회 이상의 공연이 열리지만, 올해 공연장 지원사업에서 탈락했다. 오방가르드 운영진은 “장르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기준이다.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도 펍에서 공연했고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유명 밴드 공연이 라이브클럽에서 펼쳐지고 있다. 인디뮤지션에게 라이브클럽은 공연장이며 관객에게는 인디 뮤직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식음료 판매가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고생하며 운영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공연장뿐만 아니라 뮤지션 지원 프로그램도 장르의 현실을 모른다는 비판이 또 나온다. 노드에서 만난 한 뮤지션은 “지난 주말 공연했는데 70만 원으로 모든 공연을 끝냈다. 지원 금액을 일괄적으로 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연에 따라 액수는 더 적게, 횟수는 더 많게, 사용 범위는 더 자유롭게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역의 기획사 설립, 음악 프로그램 절실

부산 인디 뮤지션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방향성과 홍보이다. 라이브클럽 무대에 서고 부산음악창작소의 지원으로 싱글, 혹은 미니 음반을 내고 운 좋으면 부산록페스티벌이라는 큰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리고 대다수 뮤지션은 다음이 없는 것 같은 벽에 부딪친다.

서울은 관련 음악 기획사, 프로듀서들이 많아 함께 다음 단계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방송 프로그램을 포함해 다양한 무대에 노출되며 밴드가 성장하는 반면, 부산은 제자리에 맴도는 상황이다. 간혹 부산 뮤지션이 서울 방송사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하는데, 출연료도 없는데 기존에 하던 일을 접고 서울을 오가야 하는 현실이 감당하기에 힘들다.

김종군 민락인디트레이닝센터장은 “마케팅을 담당하고 음악적인 방향을 고민하고 발전을 의논할 수 있는 전문기획사나 프로듀서, 레이블들이 지역에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KT&G상상마당부산의 박말순 팀장은 “음악성이 탄탄한 지역 밴드는 많아졌지만 기획, 마케팅, 팬관리, 네트워킹까지 챙기는 지역 밴드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부산 밴드의 공연은 티켓 파워로 연결되지 못한다”고 전한다.

뮤지션들은 한목소리로 부산 밴드를 알리고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실질적인 통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역 뮤지션의 음악을 소개하는 지역 방송사 프로그램이 절실하고, 싱글이나 미니음반이 아니라 음악 산업에서 인정받는 정규앨범이 나오도록 실질적인 지원도 중요하다.

부산은행은 올해 영상전문가를 섭외해 부산의 명소에서 부산 밴드 공연을 촬영한 후 유튜브에 올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부산스러운 라이브’는 부산 밴드를 알리는 색다른 시도였지만, 6개 밴드에서 중단되며 아쉬움을 남겼다.

세이수미 기타리스트 김병규 씨는 “인디씬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라이브클럽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함께 뮤지션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지속적인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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