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북극한파와 지구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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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포근했던 11월을 뒤로하고 12월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중부 지역의 경우 수은주가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갔다. 또한 하룻밤 사이 온도가 무려 15도 내지 20도가량 떨어졌고, 강원 영동지방에는 20cm가 넘는 폭설이 내릴 정도로 거센 한파가 우리나라를 연일 강타했다. 이번 한파는 시민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갑자기 늘어난 전력 수요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가뜩이나 치솟던 전력 도매가격 역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이렇게 상황이 급변한 데는 사실 11월 한 달이 겨울답지 않게 너무나 포근했던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예년 같았으면 전국적으로 10도 안팎에 머물러야 할 낮 최고 기온이 11월 한 달간 수도권은 15도, 남부 지방은 20도에 이를 정도로 겨울인지 봄인지 분간이 안 되는 화창한 날씨가 전국적으로 연일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따뜻하던 초겨울 날씨가 하루아침에 급변한 것은 과거 기록을 살펴봐도 매우 드문 일에 속한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온도가 이렇게나 떨어질 수 있을까.

12월 들어 한파 갑작스레 닥쳐

북극 찬 공기 빈번한 침투 탓

극지 기상변화 면밀히 대응해야

예로부터 우리나라 겨울철 기온 변동을 설명하는 용어로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있다. 우리나라 북쪽의 차가운 시베리아 기단이 주기적으로 강약을 반복하며 비교적 추운 날이 3일, 따뜻한 날이 4일 반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대개 기압골에 동반한 한기가 들어오는 건 이틀에서 사흘 정도인데, 이후에 하루도 안 돼서 다시 추워질 수도 있고 1주일 이상 온난한 날이 지속될 수도 있다. 다만 대략적인 의미에서 우리나라 겨울철 특성이 추운 날과 따뜻한 날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의미에서 대략 통용되는 용어였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겨울철 기온 변동에 이상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포근할 때는 한 달 내내 포근하다가 갑자기 추워지고 또 한 번 추워지면 삼사일 춥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상당히 오랜 기간 한기가 한반도를 덮고 있으면서 추운 날씨가 지속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2011년 1월에는 거의 한 달 내내 영하의 기온이 유지되어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한파가 발생하였는데 모 언론사에서는 이를 ‘29한 2온’ 현상으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학자들은 겨울철 한반도 기온의 변동 폭이 커지고 지속 기간이 길어진 원인으로 북극한파를 꼽고 있다. 북극한파는 북극 지역에서 겨우내 차갑게 식은 공기가 제트기류를 타고 순식간에 남쪽 지역으로 파고드는 현상을 의미한다. 제트기류는 북극의 차디찬 공기를 감싸면서 지구를 한 바퀴 감아치듯이 불고 있는 대기 상층의 강력한 바람이다. 제트기류는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요동치는데, 그 세력이 강력할 때는 마치 단단한 커튼과 같은 형상으로 북극의 찬 공기를 극 지역에 꽁꽁 묶어 두는 역할을 하고 그 세력이 약화되었을 때는 제트기류라는 거대한 커튼의 틈을 비집고 북극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침투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북극한파의 정체이다. 북극한파는 삼한사온 현상과는 구별되며 한 번 발생하면 오래 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북극한파가 더 잦아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학자들이 찾아낸 결론은 이번에도 역시 지구온난화이다. 지구 전체 평균 온도가 지금까지 산업혁명 이후 약 1도 오르는 동안 북극은 무려 4도나 상승했다. 북극의 얼음이 유독 심하게 녹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북극의 급격한 온난화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북극이 뜨거워지면 뜨거워질수록 찬 공기를 막아 주는 역할을 하던 제트기류의 세력이 점점 더 약해진다는 사실이다. 즉,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질수록 북극의 찬 공기를 막아 주던 커튼이 더 자주 출렁거리게 되고 북극에 머물러야 할 찬 공기가 이 틈을 비집고 우리가 살고 있는 중위도 지역으로 더 자주 출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구온난화가 북극한파 발생을 부추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지구온난화는 때때로 우리 상식과는 다른 형태로 기상재해를 발생시키는데 바로 북극한파가 그 경우에 해당한다. 특히나 이번 북극한파의 경우 특이하게도 11월 한 달 동안 북극의 찬 공기가 전혀 남쪽으로 침투하지 못하고 계속 북극에 머물렀다가 갑자기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한반도 지역으로 와르르 쏟아져 내렸기에 그 정도가 심했던 것이다.

북극의 급격한 온난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중위도 지역의 극단적 기상 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이제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분명한 것은 탄소 감축을 통해 온난화를 늦추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이 시작되고는 있지만 극 지역의 온난화는 최소 수십 년간은 더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극지에서 시작되는 여러 기상재해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파악하고 국가적으로 단단히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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