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15분 도시' 정책과 민관 협치의 결합 필요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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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부산시장 1호 공약 예산 대폭 깎여
사업성과 구체성 부족이 삭감 이유
행복 체감이 가능한 도시 환경 난망
실효적인 사업 의제 발굴·추진 필요
협치 제도 활성화로 돌파구 찾아야
지방자치제 시민 역량 강화에 도움

2019년 9월 3일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민관 협치 활성화를 위해 열린 부산시민협치협의회 출범식에서 한 시민이 '협치나무'에 소원 리본을 매달고 있다. 부산일보DB 2019년 9월 3일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민관 협치 활성화를 위해 열린 부산시민협치협의회 출범식에서 한 시민이 '협치나무'에 소원 리본을 매달고 있다. 부산일보DB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행복도시 부산.’ 박형준 부산시장이 행정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내건 시정 구호다. 박 시장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15분 도시’ 조성을 1호 공약으로 제시한 데 이어 민선 8기 시정의 3대 핵심 정책 중 하나로 삼고 있다. ‘15분 생활권’ 환경을 구축해 시민들이 편리하고 행복하도록 할 목적에서다.

최근 15분 도시 조성을 위한 내년도 주요 사업이 부산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시의회가 상임위원회별로 사상 최대인 15조 3480억 원 규모로 편성된 2023년 부산시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15분 도시 관련 사업 예산을 줄줄이 삭감한 것이다. 지난달 29일 시의회 기획재경위는 15분 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41곳에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을 개소하려는 예산 200억 원 중 무려 15%인 30억 원을 깎았다. 건설교통위도 15분 생활권 정책공모 사업비 212억 8200만 원 가운데 30억 원을 줄였다. ‘걸으면서 행복한 15분 도시’를 위한 차 없는 거리 만들기의 경우 전체의 86%나 되는 18억 원이 줄어든 3억 원만 반영됐다.


내년도 예산안은 7일 시의회 예산결산특위의 심사와 의결 후 8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확정된다. 대폭 깎인 예산이 계수조정을 통해 증액되지 않은 채 최종 처리된다면 박 시장의 대표 공약 사업은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는 올해 시행 2년 차에 접어든 15분 도시 사업이 적극적인 시민 의견 수렴보다는 보여 주기식 탁상행정에 치중한 결과로 보인다. 사업의 구체성이나 시급성이 떨어지고 다른 사업과 중복된다는 시의회의 지적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사업성이 부족하고 성과도 미흡하며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점도 시의회가 내세운 예산 삭감의 이유다. 오죽하면 박 시장과 같은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시의회가 시장의 핵심 공약 사업 예산안을 단호하게 칼질했을까 싶다.

이같이 냉엄한 질타를 받는 행정으로는 살고 싶은 도시는커녕 세부적인 15분 생활권 구현조차 요원할 뿐이다. 이들 사업은 시민 삶의 질과 생활 편의와 직결된 정책이다. 이 때문에 시민들의 바람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 행정기관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강행 역시 곤란할 테다. 지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요구와 의견을 잘 반영하는 맞춤형 시정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선 시민 제안을 받는 등 다양하고 현실적인 사업 의제를 발굴한 뒤 숙의 과정을 거쳐 내실과 실효성 있는 사업계획을 세우는 부단한 노력이 간절하다.

이런 까닭에 부산시가 2019년 7월 관련 조례까지 제정하며 도입한 민관 협치 제도가 박 시장 임기 들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시와 시민들이 연대해 지역발전 정책 마련과 각종 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대기로 한 민관 협치가 시정 구호와 15분 도시 정책 실천에 매우 유용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박 시장은 민관 협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데다 협치를 활성화하려는 의지도 부족해 보여 아쉽기만 하다.

시와 박 시장의 민관 협치에 대한 미온적인 모습은 지난 8월 단행된 조직 개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민관 협치 사업을 담당해 온 협치정책과를 총무과 내 협치조정팀으로 축소하고 담당 인력을 줄였다. 협치정책과가 맡은 업무들은 총무과와 자치분권과, 예산담당관실 등으로 분산했다. 민관 협치 사업의 컨트롤타워를 없애 버린 셈이다. 기능이 약화된 조직과 인력으로는 ‘부산시 민관 협치 활성화를 위한 조례’에 걸맞는 제도 활성화와 1차 협치 활성화 기본계획(2022~24년)상의 수많은 사업 전개는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박 시장은 2019년 9월 시와 시의회·시민단체 관계자, 학계 전문가, 시민활동가 등 29명으로 발족한 부산시민협치협의회의 당연직 의장을 맡고 있지만, 정기 회의(연 4회) 개최와 참석에 등한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민관 협치가 더불어민주당 출신 전임 시장의 작품이라 그럴 것”이란 추측성 뒷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당초 민관 협치는 복잡다단한 세태에 따라 급변하고 다변화해 행정력만으론 풀기 어려워진 지역과 시민사회의 과제들을 시민 참여와 민간과의 협치로 해결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건의를 시가 수용해 만든 새로운 협력 모델이다. 정당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정착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시대가 요청하는 제도라고 하겠다. 시의 15분 도시 정책이 활기를 띠고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이어지려면 민관 협치 제도와 결합하는 게 효과적이다. 더욱이 민관 협치 활성화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인 지방자치제 안착에 필수적인 시민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절실한 일이다. 여기에 시와 시장의 인식 전환과 태도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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