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중국 ‘시대의 파도’ 휩쓸린 인간 드라마
장편소설 원청/위화
‘허삼관 매혈기’ 작가, 8년 만의 신작
북쪽 린샹푸·남쪽 샤오메이 주인공
유랑 의미하는 작품 속 장소 ‘원청’
청나라 이후 ‘토비’ 등장 등 역사 배경
여러 사건 엮고 꿰는 뛰어난 글 솜씨
위화 방한해 15일 한국 독자와 만남
장편소설 <원청>은 1900년대 근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인간 드라마다. 1900년대는 구시대인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라는 새 시대가 시작되던 격변기였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 <제7일>로 널리 알려진 중국 소설가 위화의 8년 만의 작품이다. 상당히 복잡한 사건이 뒤엉켜 전개되는데 소설은 쉽게 술술 읽힌다. 그게 작가 필력이고 역량이다.
소설의 큰 역사적 사건은 청나라 붕괴 후 약탈집단인 토비(土匪)가 설친다는 것과, 북양군과 국민혁명군이 교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두 사람이 주인공이다. 북쪽 남자 린샹푸와, 남쪽 여자 샤오메이다.
린샹푸는 수양버들 같은 겸손함과 들판 같은 과묵함을 지닌 북쪽 남자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사는데 어느 날 오누이라는 남녀 한 쌍이 찾아온다. 갑자기 여자는 아프고 남자는 경성의 이모부를 찾은 뒤 여자를 데려가겠다고 먼저 떠난다. 그 사이에 린샹푸와 여자는 서로에게 이끌린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가 대대로 모아온 집안의 재산 절반을 가지고 떠나버린다. 린샹푸는 그런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여자가 한참 뒤 아이를 가졌다며 돌아오고, 딸을 낳은 뒤 또 떠나버린다. 딸 아이의 엄마가 바로 남쪽 여자 샤오메이다.
린샹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원청(文城)을 향해 샤오메이를 찾아나선다. 린샹푸에게 처음 왔을 때 오누이는 ‘원청에서 왔다’고 했다. 그 원청을 향해 나섰지만 원청은 지도에 없는 곳이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 린샹푸는 대신 남쪽 도시 시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10~20년이 지나면서 린샹푸는 시진의 부호가 되고,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 시진에 북양군 패잔병들이 휩쓸고 가고,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사건인 토비 습격 사건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는다.
토비가 시진의 유지를 납치했을 때 린샹푸가 대표로 토비 두목을 만나 협상을 벌이게 되지만 그 협상 과정에서 린샹푸는 살해 당한다. 착한 북쪽 남자, 의지가 곧은 북쪽 남자 린샹푸는 그렇게 수십 년간 샤오메이를 찾아왔건만 중도에 죽어버리는 것이다. 남은 자들이 토비를 상대로 린샹푸의 복수를 벌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설의 이런저런 흥미롭고 처참한 사건이 벌어진다. 수많은 사건과 참혹한 사건을 이리저리 엮고 꿰는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린샹푸는 죽어버렸는데 샤오메이의 삶은 어떻게 됐나. 린샹푸의 삶에는 당대 굵직한 역사가 스치고, 비극이 작동하지만 샤오메이의 삶에는 당대 여성의 애잔한 운명이 가로놓인다. 애초 린샹푸의 집에 오누이라고 찾아왔던 샤오메이와 그 오빠 아청은 부부지간이다. 샤오메이는 어릴 때 민며느리로 아청 집에 시집을 가지만 친정을 도와주는 어쩔 수 없는 사건이 빌미가 돼 시댁에서 쫓겨난다. 샤오메이와 아청의 부부지간은 좋아 같이 도망치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도에 샤오메이는 린샹푸에 끌려 딸을 낳게 되고, 첫 남편 아청도 버릴 수 없는 희한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린샹푸가 원청으로 가는 길에 살게 된 시진에 샤오메이도 살고 있었다. 린샹푸가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샤오메이는 속으로 눈물을 삼킨다. 딸을 보고 싶었으나 보지 못하고, 숨어서 그들이 잘 되기를 한없이 비는 것이다. 시진의 사찰에서 사람들이 동사하는 큰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때 린샹푸와 딸을 위해 기도하러 갔던 샤오메이도 그만 죽어버리는 것이다.
1900년대 린샹푸와 샤오메이는 시대적 격랑과 시대적 한계 속에서 다시 만날 수 없었고. 그렇게 죽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린샹푸는 원청이 어딘지 알 수 없었으나 시진에 새 삶을 시직하면서 샤오메이와 스쳤다. 시진이 원청은 아니었으나 린샹푸의 느낌에 시진이 원청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원청이 어딘지 몰랐으나 결국 알았던 셈이다. 소설에서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안타까운 사랑과, 수많은 사건이 전개된다. 린샹푸의 시신을 운구하던 일행의 길이 중도에 끊긴다. 일행은 산길을 잡아가게 된다. 도중에 쉬게 되는데 그 자리가 샤오메이의 무덤이 있는 자리다. 린샹푸와 샤오메이는 죽어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원청이 어딘지 몰랐으나 결국 알았던 것처럼 둘은 살아서 만나지 못했으나 결국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한편 위화는 방한해 15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교보컨벤션홀에서 한국 독자와 만난다.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2022 세계 작가와의 대화’에서 ‘중국의 1900년대’를 주제로 강연한다. 위화 지음/문현선 옮김/푸른숲/588쪽/1만 85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