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틈에 일주일 낀 고양이, 구청은 ‘나몰라라’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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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미중앙시장 상인들이 발견
수영구 연락했지만 도움 안 돼
“체계적 구조 시스템 구축해야”

8일 오전 10시께 동물구조단체 라이프의 심인섭 대표가 고양이 구조에 나섰다. 8일 오전 10시께 동물구조단체 라이프의 심인섭 대표가 고양이 구조에 나섰다.

8일 오전 10시께 부산 수영구 망미중앙시장에서 10cm도 채 안 되는 벽과 천막 사이 좁은 틈에 단단히 끼여 발버둥치던 한 고양이. 동물구조단체 ‘라이프’ 심인섭 대표가 30분 넘게 구조작업을 벌인 끝에 탈출구가 마련되자 고양이 눈이 ‘반짝’였다. 삼삼오오 모여 구조 현장을 지키던 시장 상인들 입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이고 천만다행이네.” “이 추운 날 얼마나 고생했을까.”


고양이 울음소리가 처음 들린 건 지난 1일 오후 7시께였다. 퇴근을 준비하던 상인 장승현(61·수영구) 씨는 울음소리를 듣고 고양이가 있는 곳을 겨우 찾아냈다. 하지만 틈이 너무 좁아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 장 씨는 다음날 주변 상인들과 함께 벽을 벌리고 막대기로 밀어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구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고령의 상인들은 고양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러 방법을 찾던 중 지난 6일 114를 통해 사설구호단체 번호까지 찾아냈다. 하지만 업체와는 끝내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장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 7일 오전 수영구청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구청 측은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동물 구조는 구청이 지정한 유기동물보호센터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라는 답변만 내놨다. 구청에서 다른 구조업체 번호를 알려줬지만, 전날 수차례 시도해도 통화가 안되던 바로 그 업체였다.

구조를 기다리는 고양이 이야기가 시장 전반에 퍼져 나가면서 지난 7일 오후 늦게 또다른 동물 구조단체 라이프와 겨우 통화가 이뤄졌다. 라이프가 구조에 응하면서 ‘고양이 구조 작전’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라이프 심 대표의 구조작업으로 탈출구가 만들어지자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고양이는 일주일간 물과 밥을 못 먹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틈새서 나와 상인들을 사이로 비집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인사도 없이 가는 고양이 뒷모습을 보며 한 상인은 “저 녀석 때문에 우리가 마음 졸인 게 얼마인데 서운도 하지만, 이제 좀 잘 살아라”고 말했다.

일주일간 작은 생명을 구하려 한 팀이 된 50~60대 상인들은 참 묘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고양이를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애처로운 모습을 보니 살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는 것이다.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면 심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장 씨는 “우리같이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며 “일단 생각난 게 구청인데 구청에서도 연락이 되지 않는 번호만 알려줄 뿐 별다른 조치가 없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지자체 차원의 체계적인 동물 구조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이 종종 벌어지는 만큼 위탁 업체 선정시 보호는 물론 구조 능력 여부를 파악할 필요성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위기에 처한 동물을 발견했을 때 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하다못해 이런 일이 있을 때 어떻게 어디에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메뉴얼이라도 있다면 주민들이 대응하기가 훨씬 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사진=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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