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왜소해진 정치의 '대화 불가능' 선언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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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정치 경험 전무한 당 대표 차출론 나온 與
‘이재명 리스크’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野
강성 지지층 적대 정서에 매몰된 여야
자정·결정 능력 상실한 정치의 왜소화 불러

“정치인은 4류, 관료·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발언이 나온 지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우리 정치 수준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4류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태반일 것이다. 사실 이전까지 주변에서 이런 말을 나오면 “정치만 홀로 저급한 걸까요”라고 딴지를 걸곤 했다. 그 언저리에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의 어쭙잖은 동류의식 같은 건 아니다. 복잡한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손 쉬운 책임 전가로 비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런 말과 인식이 정치 변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정치권의 퇴행에 대해서는 나조차도 딱히 변호할 말도,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문제 해결의 정점에 있어야 할 정치가 뭔 일만 생기면 경찰, 검찰, 법원으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 됐다. 중요한 사회적 어젠더에 대한 논의는 한 없이 더딘 반면 가짜 뉴스, 혐오 표현을 놓고는 맹렬히 싸운다. 타협하고, 결정하는 게 정치의 본령이라는 걸 까맣게 잊은 채 일부 강성 지지층의 적대 정서에 편승해 진영의 좁은 진지만 지키려 드는 듯하다.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위기지만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에서 ‘한동훈 차출론’이 꽤 진지하게 거론된 것은 한껏 왜소해진 여당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대통령의 최측근이 초고속 장관 승진에 이어 집권여당 대표 자리를 차지한다? 종속적 당정 관계는 물론, 여야 관계에 미칠 부작용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야당의 집중 공격을 되받아치는 한 장관의 전투력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강성 지지층에게는 그것 하나만으로 집권여당 대표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니 지금의 당권주자들이 ‘성에 차지 않을’밖에. “이런 분위기면 총선 전 또 비상대책위원회에, ‘직업적 비대위원장’인 김종인이 재등장할지도 모르겠다”는 한 초선 의원의 농담이 그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재명 리스크’에서 허우적대는 더불어민주당의 처지는 더 딱하다. 자신도 인정한 최측근 두 사람이 구속 기소 되면서 대장동 의혹은 뚜렷한 실체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 대표에겐 그저 “정치검찰의 소설”일 뿐이기에 비슷한 국면에서 과거 지도급 인사들의 선공후사, 결자해지 같은 덕목은 전혀 고려 사항이 못 된다. 문제는 당의 존망이 걸린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단발적인 비판이 나오지만, 이 대표를 둘러싼 강력한 팬덤의 벽을 뚫고 나가기엔 역부족이다. 오히려 ‘청담동 술자리’라는 얼토당토 않은 가짜뉴스를 퍼트린 의원에게 후원금을 몰아주는 병적 징후는 더 심해졌다. 비이재명계 일각에서 뜬금 없이 이 대표의 총선 공천권 포기를 언급한 건 결국 총선 국면까지 가봐야 뭔가 바뀔 것이라는 무력한 자기고백으로 들린다.

정치가 왜소해지니 증오로 무장한 팬덤의 그립은 더 강해지고, 그럴수록 정치인은 움츠러든다. 여야 의원들이 모처럼 협치를 복원하자며 지난달 함께했던 친선 축구대회에는 “전쟁 중에 한가하게 이럴 때냐”는 강성 지지층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그게 잘못됐다고 맞서지 않는다. ‘조국 사태’ 때 소극적으로 방어했다는 비판에 시달린 민주당은 ‘이재명 사태’에서 당과 무관한 개인 비리 의혹을 엄호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지지층의 부정적 정서를 등에 업은 여권에서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 모임을 향해 “정쟁으로 소비되다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야멸찬 말들이 난무한다.

엊그제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일방 처리에 “민주당은 정치라는 탈을 쓰고 가슴에는 칼을 품고 다니는 ‘정치 자객들’”이라며 “더 이상 민주당과는 그 어떤 협치도, 그 어떤 대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했다. 이것은 ‘윤심’일까? 그래 보인다. 집권 초기 “통합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던 윤 대통령은 최근 법과 원칙만 유독 강조한다. 야당과의 대화 노력은 더 이상 시간낭비라는 인식이 굳어진 듯하다. 때마침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원칙적 대응으로 지지율도 올랐다. 운 좋게 총선 전 악화된 경기마저 풀릴 조짐을 보인다면 가장 큰 과제인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할 동력을 확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정치공학적 접근이 단기간에 성공한다고 해도 협치의 가능성조차 끊어진 여야 관계가 국가의 미래에, 당면한 난제 해결에 어떤 도움이 될까? 증오의 소용돌이 속에 갈수록 왜소해지는 정치는 여도, 야도 망치고, 종래에는 정치 자체를 형해화할지 모른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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