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포에서 시작한 해양경찰, 해양전문성 갖춘 인재 중용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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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 직무대리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예로부터 모든 조직은 인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유능한 인적자원의 채용과 육성 그리고 바른 쓰임에 노력해 왔다.

일본과 미국의 해양전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태평양 전쟁에서도 인사의 중요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일본은 중·일 전쟁을 거친 유능한 승조원과 최강의 항모전단을 가지고, 세계 최초로 현대식 항공모함 운용법을 활용해 약 6500km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최장거리 기습으로 진주만 공격을 성공시켰다. 미국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태평양함대사령관으로 취임한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6·25전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맥아더와 함께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으로 꼽히는 명장이며, 인정받지 못했던 인재들을 중용한 리더십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일본 공격을 사전에 알지 못한 정보수집 실패의 책임을 물어 진주만 암호해독 책임자였던 로슈포드 중령을 경질하려 하자, 니미츠는 전문가로서 경력과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다시 중용 했다. 이후 로슈포드 중령이 이끄는 진주만의 암호해독반은 워싱턴 정보라인과의 의견 대립 속에서도 일본의 라바울 침공 예측을 시작으로 미드웨이 공격을 사전에 정확히 예측해 일본 정규 항모 4척을 수장시키는 대승으로 전쟁의 흐름을 돌려놨다.

니미츠는 해군원수 진급을 앞두고 1944년 10월 9일 진주만 해군기지에서 브리핑 중 일본이 해전에서 패한 적이 없다며 태평양 전쟁의 승리를 장담하는 것에 반박하였다. 놀랍게도 충무공 이순신을 언급하며, 일찍이 일본은 조선의 제독에게 부산포 해전 등 많은 해전에서 무참히 패배했다고 언급하였다.

미국의 니미츠가 충무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명장은 명장을 알아본 모양이다. 니미츠가 언급한 부산포 해전은 1592년 10월 5일 충무공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의 연합함대가 왜적 보급의 중심이자 한반도에 전개한 해상 세력의 본거지였던 부산포를 위풍 당당히 뚫고 들어가 하루 종일 공격해 정박해 있던 470여척의 적선 중 120여척을 멸해 일본군을 반신불수로 만들고, 평양까지 진군했던 고니시를 주저앉게 만들었던 해전으로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충무공이 가장 높이 평가했던 해전이었다.

그런 부산포 해전의 역사적 현장에서 1953년 12월 23일 해양경찰은 나무로 건조된 소해정 6척을 인수해 해양경찰대로 출발했다. 그 후 해양경찰은 장비 증강 등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현재는 함정 350여 척, 항공기 25대로 하드웨어적인 면에서 눈부시게 성장했다. 하지만 창설 69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세월호 사고, 영흥도 낚시어선 사고 등 큰 사고가 있을 때 마다 전문성을 의심받았다. 해양경찰 창설 이래 해양경찰 출신 청장이 불과 4명에 그치는 등 현장 전문형 조직 보다는 행정 관리형 조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임무 특성상 고도의 해양전문성, 바다에 대한 높은 이해가 선결되었어야 했으나, 이를 경시해 왔던 것이다. 해양전문성을 갖춘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해양경찰 직무 특성을 고려한 인적 자원을 채용하고, 다양한 입직 경로를 가진 직원들에게 초임 시절부터 부족한 해양 역량을 채워주는 교육훈련과 보직 순환 등을 통해 바다에 대한 높은 이해를 가진 인력으로 육성하여야 한다.

충무공 이순신과 니미츠의 성공적 리더십 중심에는 사람(人才)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이 도망가고 전국의 군사와 민심이 흩어지고 수세에 몰린 절망스런 상황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23전 23승이라는 극명한 전투를 이끌어 나아갈 수 있었던 비결은 천자(天子), 지자(地子), 현자(玄子)와 같은 다양한 구경의 대포와 판옥선의 견고함으로 평가되는 무기체계의 우수성 등 많은 요소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조선(造船)의 전문가 나대용, 수군(水軍)다운 녹도만호 정운, 바닷길의 전문가 어영담 등 해양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적소에 중용해 쓰임을 다하게 하고, 수군들의 훈련을 충실히 하며, 그 지역 바다와 물길을 아는 촌로의 말을 귀담아 듣고 중히 여겼던 것이 전승의 신화를 만들어낸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다.

해양주권과 제해권을 '인재의 중용'으로 가져온 그들처럼 해양경찰도 해양 DNA를 가진 유능한 인적자원을 확보·양성해, 세계 해양질서 재편과 국제 해양환경의 변화에 대비한 바다의 핵심전력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부산은 임란과 일제치하에서는 약탈과 수탈의 현장이었고, 6.25 전쟁 중에는 임시수도이자 피란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현재는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이자 미래 2030을 준비하는 역사적, 지정학적, 시대적 미래가치가 높은 곳이다.

충무공의 혼이 서린 해양경찰의 창설지인 부산! 우리바다의 중심에서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의 소임을 맡고 있는 감회와 책임감을 크게 느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안전하고 깨끗한 희망의 바다! 다음 세대가 희망으로 바라볼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지는 1만 3000여 해양경찰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응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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