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잉크와 링크 사이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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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선 콘텐츠센터장

부산일보 신문·콘텐츠 센터 분리
독자 친화 콘텐츠역량 강화 목적

종이신문 구독자 지속 감소에도
뉴스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여전

지역언론은 ‘가성비’ 높은 상품
독자들의 응원과 비판이 자양분

 세기말의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던 1999년, 기자가 되었다. 신문사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코였다. 잉크 냄새가 건물 전체에 은은했다. 점심 전에 나오는 신문(당시 석간)은 덜 마른 잉크 때문인지 촉촉한 느낌과 함께 진한 향기를 풍겼다. 기자라는 직업은 그렇게 아날로그로 다가왔다.

 15년 뒤, 기자인 덕분에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호기심에 들른 저널리즘스쿨 도서관에서 인상적인 내용의 책을 발견했다. ‘잉크의 시대는 가고, 링크의 시대가 온다’. 뉴스 플랫폼이 종이(ink)에서 웹(link)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막연하게 느껴지던 디지털의 쓰나미가 확 덮쳐오는 것 같았다.

 같은 시기 수업에서 ‘Disintermediation’(탈중개화)이라는 단어도 난생 처음 들었다. 그동안은 기자와 뉴스 소비자 사이에서 신문사나 방송사가 중개(media)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 기자와 소비자가 바로 연결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언론사보다 기자 개개인의 브랜드가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2030년을 내다보는 지금, 기자들에게 웹이나 자기 브랜드는 일상이 되었다. 포털에서는 특정 기자를 구독해 그의 기사만을 골라 볼 수 있다. 또 어떤 기사를 많이 클릭했는지 매순간 성적표가 나온다. 외국의 언론 관련 콘퍼런스에 가면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자’도 더러 볼 수 있다.

 종이신문은 어떻게 됐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종이신문을 읽은 비율은 지난해 8.9%다. 2000년 81.4%, 2011년 44.6%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부산일보 11월 8일 자 23면 임영호 명예교수 칼럼)이다. 이런 급전직하의 한중간에서 나는 기자로 살았다. 반면,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네이버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게 됐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의 처는 집에서 삼겹살 구울 때나 ‘신문지’를 찾고, 기사는 오로지 포털에서만 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뉴스 자체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이신문, 인터넷, 모바일을 다 합쳐 신문기사를 읽은 비율이 90%에 육박한다. ‘종이’로 된 신문은 잘 안 읽지만, 뉴스에 대한 수요는 여전한 것이다. 신문사 잉크 냄새가 마냥 좋았던 24년 차 기자 입장에서 이 같은 현실이 상전벽해처럼 느껴진다.

 근본적 고민은 언론에 대한 신뢰 하락이다. ‘기레기’(기자 쓰레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과거 ‘오보’라고 항의받던 것이, 요즘은 ‘가짜뉴스’라고 지탄받는다. 틀린 보도를 일부러 했다는 뜻이 담겼다. 클릭수에 매몰돼 정작 지향해야 할 것이 뭔지 잊기도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지난달 말 편집국 콘텐츠센터장으로 발령났다. “콘텐츠센터가 뭐하는 뎁니까?”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묻는 질문이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이고,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 아래 <부산일보>는 도전을 시작했다. 편집국을 두 센터(콘텐츠, 신문)로 분리했다. 콘텐츠센터가 재료(기사·동영상·그래픽 등)를 생산하면, 신문센터가 그 중에서 엄선해 종이신문을 만드는 개념이다. 종이신문을 만들던 편집부 기능 일부는 취재부서로 돌렸다. 70년 넘게 신문을 만들던 관성을 깨고, 있는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재구성해 보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도대체 뉴스 소비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모든 시도는 콘텐츠 생산 역량을 높이기 위함이다. 종이든, 포털이든, 부산닷컴(busan.com)이든 결국 승부는 ‘내용’에 따라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의 폭과 깊이를 고민하는 중심이 콘텐츠센터장이다.

 팩트를 검증하고, 맥락을 짚고, 쉽게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여기에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지역 여론을 결집하고 전달하는 도구로써 언론만 한 게 있을까. 시쳇말로 ‘가성비’ 높은 상품이다.

 물건이 준비됐다면 어디에서 팔지 정해야 한다. 우리에겐 두 목표가 있다. 일단 독자 대부분이 있는 웹에다 많은 콘텐츠를 유통한다. 하지만 종이신문에 소홀할 수 없다.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서는 눈, 코, 입, 귀, 손 등 오감을 쓰는 종이신문은 정보과잉시대에 럭셔리 상품이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느린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게 종이신문이다. 웹은 포털이 대세이지만, 부산닷컴의 자생력을 높이려고 한다.

 “기자는 비판정신을 팔아먹는 직업이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어느 선배가 내게 해줬던 말이다. 저널리즘(비판)과 비즈니스(밥벌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이것은 언론사의 오랜 고민이다. 돌이켜 보면 세기말의 불안이 그나마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언론이라는 업(業)의 본질을 생각하며 더듬거리며 나아갈 뿐이다. 독자들의 응원과 비판을 바란다.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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