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ITT 도로
환적화물은 운송 도중에 목적지가 아닌 항만에서 다른 선박으로 옮겨 싣는 물동량을 말한다. 환적화물은 적재할 배를 바꾸느라 A부두에 내려져 B부두에서 실리는 등 두 번의 하역작업을 거쳐야 해 하역료 부담을 키운다. 반면 부두운영사에게는 고부가가치 화물로 인식된다. 환적화물의 경제 효과는 수출입 화물에 비해 50% 이상 높다. 부산항 등 세계 굴지 항만들이 치열하게 환적화물 유치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부산항이 지난해 처리한 컨테이너 물동량 2270만 6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중 환적화물은 54%로 싱가포르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환적화물은 부산항 전체 물동량의 70%를 담당한 부산신항으로 대거 몰린다. 신항은 세계 해운동맹 선사 선박의 기항이 많아 한 부두에서 수용할 수 없는 대규모 물동량이 내려져 인근 부두로 옮기는 일도 빈번하다.
신항 7개 부두의 야드에는 이런 화물을 겨냥해 ‘ITT’(Inter Terminal Transport·항만 내 부두 간 운송)로 불리는 연결도로가 개설돼 있다.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시설이다. 평소 거의 사용되지 않아 생소하다는 항만 관계자들이 있을 정도다. 이는 신항 모든 부두가 각각 다른 자본으로 건설돼 부두별 운영사와 운영체계가 제각각인 데다 보안과 안전을 이유로 ITT 도로 출입이 통제돼서다. 신항의 환적화물은 부두가 단절된 탓에 화물차에 실려 항만 밖으로 나갔다가 환적할 배가 있는 다른 부두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육상 운송을 위한 추가 물류비가 발생해 항만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ITT 도로의 진가는 두 차례 화물연대 총파업에서 발휘됐다. 지난달 24일~이달 9일 16일간의 2차 파업 시 비상대책으로 ITT 도로가 개방된 게다. 이 기간 ITT 도로를 통해 수송된 물동량은 20만 9757TEU다. 신항 수용 능력이 41만TEU인 걸 감안하면 51%를 항만 내에서 처리한 셈이다. ITT 도로 덕분에 부두 적체와 부산항 마비를 막을 수 있었다. 올 6월 8일 동안의 1차 파업 때도 마찬가지다. 부산항이 물류대란 없이 최근 빠르게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자 ITT 도로 사용을 활성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부터 잇따라 개장하는 신항 서컨테이너부두 5개 선석과 2035년까지 15개 선석이 개발될 부산항 진해신항에도 이 도로가 필요해 보인다. 물론 여러 개 부두 통합 운영, 부두운영사 단일화 등 항만 효율화가 이뤄져야 ITT 도로의 원활한 운영이 가능할 테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