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북항에 해상도시가 뜨기 전에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최혜규 해양수산부장

2023년은 해운업계 온실가스 규제 원년
탄소 배출량 기준 미충족 선박 퇴출 시작
해운강국 위상 걸맞은 지원과 대응 필요

이르면 2028년, 부산항 북항 앞바다에는 세계 첫 해상도시가 뜬다. 5층 규모의 정육각형 모듈 3개에는 주거를 비롯해 상업과 연구 시설이 들어서고, 모듈마다 300명 정도가 살 수 있다. SF 영화 속 이야기 같지만 유엔 산하 국제기구 해비타트가 부산시와 손잡고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해상도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해 띄우는 ‘노아의 방주’다.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 최근 보고서는 2100년 해수면이 1995~2014년 대비 0.5~0.9m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빙하가 급격히 붕괴하는 시나리오라면 전망치는 2m까지 올라간다.


미래는 명약관화하지만 해상도시까지 가기 전에 국제사회는 탈탄소를 위한 숙제들을 제시한다. 특히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를 차지하는 국제 해운업계에게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세계해사기구(IMO)가 당장 2023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외항선에 대해 두 가지 강력한 규제, 현존선 에너지효율지수(EEXI)와 탄소집약도지수(CII) 적용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EEXI는 선박 엔진 성능과 에너지효율 등을 토대로 계산한 설계상 탄소 배출량이라면 CII는 실제 탄소 배출량이다. EEXI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엔진 출력을 제한하는 식으로 감속 운항을 해야 한다. CII 다섯 등급 가운데 하위 2개 등급 선박은 개선이 되지 않으면 2026년부터 운항 금지가 시작된다. 결국 해운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환경 선박을 도입해 탄소 배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업계는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해양수산부가 대상 국적 선박을 조사해 보니 EEXI의 경우 991척 중 655척(66.1%), CII는 777척 중 251척(32.3%)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최대 국적선사인 HMM도 자체 대상 선박 79척 중 26척(33%)이 EEXI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파악하고 이 배들을 일단 당분간 감속 운항할 예정이다. CII 등급은 아직 분석 단계다.

문제는 이런 규제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IMO는 당초 2050년까지 국제해운 온실가스 총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이상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 목표는 내년 열릴 다음 해양환경보호위원회에서 탄소중립, 즉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 제로로 상향될 가능성이 크다. 연료 소모량 규제나 탄소부담금 같은 추가 조치 도입도 곧 결정될 전망이다.

EU는 한발 더 나아간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권리를 사고 팔 수 있는 배출권거래제(ETS)를 2024년부터 해운 분야로 확대한다. 역내 입출항하는 모든 선박은 배출권을 구입해서 제출해야 한다. 2025년에는 EU 항만에 기항하는 모든 선박의 연료에 대해 생산부터 사용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따져 벌금을 매기는 조치도 시행한다. 5년 단위로 기준치를 강화해 2050년까지 친환경 연료 전환을 유도한다.

해운업계는 어떤 친환경 연료를 어떻게 공급받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에 혼란에 빠졌다. HMM 김규봉 해사총괄 상무는 지난 26일 부산항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해수부의 해양환경 정책설명회에서 이런 흐름에 대해 “선사 입장에서는 CII 하나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인데, 연속해서 도입될 규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지역의 중소선사들은 더욱 심각하다. 인력 부족 등으로 규제의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등급을 사전에 계산해 대비하기 어렵다. 저감 장치를 설치한다고 해도 배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시한부 수명을 고작 수년 연장하는 결과가 될 뿐이다. 그사이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는 일찌감치 친환경 메탄올 연료를 쓰는 선박 19척을 발주하며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다. 해운업계는 친환경 신조선을 위한 정책 금융 지원과 중소선사를 위한 적극적인 컨설팅을 주문한다.

이밖에 정부 차원의 도전도 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국내 최대 무역항 부산항과 미국 서부 시애틀의 타코마항 간 녹색해운항로를 구축하는 데 합의했다. 10년 이내에 이 항로에 투입되는 선박을 메탄올·암모니아·수소 등 저탄소 또는 무탄소 선박으로 전환하고 연료공급 인프라도 구축할 계획이다. 항만업계도 마찬가지다. 부산항 또한 물동량 유치를 넘어 탄소중립과 친환경 항만 조성이라는 목표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북항 앞바다의 해상도시는 2030부산엑스포에서 자연과 함께 지속 가능한 지구라는 엑스포의 주제를 구현한다. 세계 7위 해운 강국이자 세계 2위 환적 항만인 부산항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기후 위기라는 과제에 적극 대응하고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 엑스포 유치의 공감대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해운업과 해양도시 부산의 미래를 위해서도 물론이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