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91. 시·도지사 17개?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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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팀장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시도협의회)가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나섰다. 전국 17개 시·도지사를 중심으로 지방시대를 이끌어 나갈 이철우 경북지사가 시도협의회장 취임과 동시에 ‘지방분권형 개헌’을 역설하면서다.’

현대 한국인 대부분은 이런 기사 문장을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17개 시·도지사’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어순을 바꿔 ‘시·도지사 17개’로 써 보면 알 수 있듯이 ‘시·도지사’를 17명이 아니라 ‘17개’라고 표현한, 아찔한 문장인 것. 그렇다면 ‘17개 시·도 지사’로 띄어 써야 할까. 이것 역시 ‘17개 시·도청’의 우두머리를 ‘지사’라고 했으니 잘못이다. 지사에 시장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지사(知事): 한 도(道)의 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 자치 단체장. =도지사.

그러니, 정확하게는 ‘17개 시·도 시장·도지사’라야 한다.(‘17개 시·도 단체장’도 해법이겠다.)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와 달리 ‘시도지사협의회’로 쓴 것 역시, 앞서 얘기했듯이 지나친 축약이어서 어색하다. ‘시장도지사협의회’라고 한 글자만 더 넣었더라면….(일본은 도·도·부·현(都·道·府·縣) 지방정부의 우두머리를 모두 ‘지사’라 부른다.)

사실 우리 말글살이에서는 언어의 경제성 때문에 축약이 활발히 일어난다. 하지만, 줄여선 안 되는 것까지 심하게 줄여 문제가 된다. 아래 기사를 보자.

‘해당 노선은 티웨이항공이 2012년 4월 취항한 뒤 출도착 공항의 편리한 도심 접근성 덕분에 꾸준히 인기를 끌었던 노선이다.’

여기에 나온 ‘출도착’이 바로 너무 심하게 줄인 예. ‘입항·출항→입출항/수출·수입→수출입’처럼, 줄이기 위해선 겹치는 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출발·도착’에는 중복하는 말이 없으니, 이렇게 줄여선 안 될 일. ‘출발·도착’이 길다고 ‘출도착’으로 줄일 요량이면 ‘출착’으로는 왜 못 줄였을까. 게다가,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발착(發着): 출발과 도착을 아울러 이르는 말.(철로를 다 고쳐서 이제는 열차 발착에 지장이 없다….)

이렇게 출발과 도착을 함께 이르는 말이, 더군다나 ‘출도착’보다 글자 수가 더 적은 말이 엄연히 있으니….

한데, 기어코 사전에까지 오른 엉뚱한 말도 있다. 표준사전을 보자.

*장사병(將士兵): 장교와 사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줄일 수 없는 ‘장교+사병’을 ‘장사병’으로 억지로 줄여서 쓰다 보니 이렇게 사전에까지 올라 버려, 쓰지 말라고도 못 하게 된 것. 아, ‘시도지사’도 〈우리말샘〉에는 올라 버려 찜찜한 건 마찬가지가 됐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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