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메시 이전에 펠레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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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용 스포츠라이프부 에디터

유일하게 월드컵 세 차례 우승 달성
오버헤드 킥 비롯 갖가지 기술 완성
현대 축구 시대 연 영원한 ‘축구 황제’

‘페널티아크에서 공을 받자마자 등지고 있던 수비수 머리 위로 공을 넘긴다. 이어 발끝으로 공을 튕겨 차례로 2명의 수비수 머리 위로 넘긴다. 마지막엔 무릎으로 한 번, 발끝으로 한 번 공을 튕겨 골키퍼마저 머리 위로 공을 넘긴 뒤 헤더로 골문 안으로 집어넣는다.’

리프팅 기술로만 상대 수비수 3명을 제치고 골키퍼마저 리프팅으로 따돌려 골을 넣은 장면이다. 워낙 만화 같은 골이라,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1959년 8월 2일 브라질 리그 산투스FC 소속으로 뛰던 펠레가 상파울루 라이벌 팀인 CA주벤투스를 상대로 기록한 이 신기에 가까운 골은 영상으로 남아 있지 않다. 당시 현장에서 직관한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현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있다.

또 얼마 전 아르헨티나 출신의 카투니스트 악셀(Aczel)이 출간한 〈축구 역사를 빛낸 최고의 골〉이란 책에 이 원더골에 대한 설명이 삽화와 함께 실려 있다. 이 책에는 손흥민이 푸슈카스상을 탔던 번리전 원더골(2019년)도 소개돼 있다. 70m가량을 질주하며 상대 수비수 6명을 따돌리고 터트린 이 골의 원조도 따져 보면 펠레다.

펠레가 플루미넨세와의 경기에서 산투스 골대 앞에서 드리블하기 시작해 수비수 7명을 따돌리고 넣은 원더골이 작성된 날이 1961년 3월 5일이다. 이 장면 역시 당시 중계 환경의 한계로 영상이 없다. 다만 경기가 열렸던 마라카낭스타디움에 기념판까지 설치돼 있을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두 장면만 봐도 펠레가 왜 ‘축구 황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로 칭송받는지 알 수 있다.

펠레는 등장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15세 때 브라질 명문 산투스에 입단한 그는 1958년 만 17세의 어린 나이에 스웨덴 월드컵에 나섰다. 부상으로 조별리그는 한 경기만 뛰었지만 웨일스와의 8강전에서 결승골(1-0 승), 프랑스와 4강전에선 해트트릭(5-2 승), 결승전에선 멀티골(5-2 승)을 넣어 브라질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이 대회에서 펠레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월드컵 최연소 득점, 최연소 해트트릭, 최연소 결승전 득점을 기록했다.

이어 1962년 칠레,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펠레는 역사상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자’로 남았다. 1966년 잉글랜드 대회에도 펠레는 출전했지만, 상대 선수들의 집중적인 살인 태클에 부상을 당해 제대로 뛰지 못하면서 브라질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펠레의 수난은 1970년 멕시코 대회 때 레드카드가 생기고, 교체 제도가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이전에는 선발로 나선 선수는 끝까지 경기를 뛰어야 했고(다치더라도), 어떠한 거친 반칙에도 퇴장이 주어지지 않았다.

펠레는 숱한 대기록을 세웠다.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과 함께 월드컵 통산 12골 8도움(20공격포인트)을 남겼다. 이는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13골 8도움으로 21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리기 전까지 최다 공격포인트였다.

클럽과 대표팀 통틀어 통산 득점은 펠레와 브라질 측에선 1283골로 주장한다. 이 기록은 투어 경기와 친선경기 득점이 포함된 데다 오래된 기록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 국제스포츠통계재단(RSSSF)은 757골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한다. 통산 득점 757골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819골)와 메시(793골)가 넘어섰다.

산투스에서 660경기를 뛰면서 643골을 뽑아 단일 클럽 최다 골 기록도 세웠다. 이 역시 메시가 FC바르셀로나에서 작성한 672골에 밀렸다. 다만 펠레가 1959년 한 해 동안 넣은 127골은 여전히 ‘1년간 최다 득점’으로 인정받는다.

지난해 메시가 월드컵 우승의 한을 풀면서 많은 팬들은 역대 최고 선수로 메시를 꼽는다. 이미 여러 기록에서 펠레를 뛰어넘었고, 그의 현란한 드리블과 슈팅을 접한 팬들은 주저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하지만 펠레에겐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오늘날 축구의 인기와 월드컵의 위상은 사실상 펠레의 등장에서 시작됐다. 펠레는 사람들에게 축구의 묘미와 재미를 알려줬다. 양발 드리블, 발리슛, 노룩·백힐 패스, 오른쪽으로 공을 치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기술 등 당시엔 보기 드물었던 모든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말로만 전하던 오버헤드킥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도 펠레였으며, 발 뒤꿈치로 공을 차올려 수비수 머리 위로 넘기는 ‘레인보우 플릭’ 기술도 펠레가 처음 선보였다.

펠레는 현대 축구 시대를 연 선구자다. 그가 떠났지만, 영원한 ‘축구 황제’로 기억되는 이유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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