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연주하는 남자 “삶을 더 아름답게 하는 음악”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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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공연 첼리스트 요나 김

첼리스트 요나 김. 요나 김 제공. 첼리스트 요나 김. 요나 김 제공.

파블로 카잘스 영상 보며 독학

7세 때 줄리아드 오디션 합격

‘철로 거장’ 슈타커 자택 기거하며 사사


챔버 페스티벌로 부산 무대 서

유튜브 통해 레코딩 회사 연결

“감정·생각 바꾸는 음악 놀라워”



웃는 남자. 뮤지컬 제목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내내 얼굴에 미소를 머금기가 쉽지 않은데, 그는 웃다가 찡그렸다가 다시 웃기를 반복했다. 결론은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역력했다는 거다. 그는 한국인 미국 시민권자 첼리스트 요나 김(35·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 루이스 오비스포 모자이크 페스티벌 2022~2023 레지던시 아티스트)이다. 뉴욕의 줄리아드 예비학교 오디션에 합격한 7세부터 미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첼로 거장 야노스 슈타커(1924~2013)는 그를 “그 세대의 최고”로 평가하고, 워싱턴 포스트는 그를 “차세대 요요마”라고 극찬했지만 국내 클래식 음악 팬들에겐 다소 낯선 얼굴이다.

“한국 연주는 처음입니다. 부산도 첫 방문이고요. 넷플릭스에서 ‘백스피릿’ 프로그램을 아내와 함께 보면서 부산에 꼭 와 보고 싶었습니다. 화면 속 해변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먹고 싶은 부산 음식도 많았는데, 요 며칠은 그걸 다 하고 있어서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지난 3일 개막한 ‘2023 부산문화회관 챔버 페스티벌’ 참가 차 지난달 30일 부산에 도착한 요나 김. 부산에 도착한 이래 연습하고 밥 먹고, 연주하고를 반복할 뿐이지만, 부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부산대 음악관 관현악 연습실에서 가진 첫 만남 이후 챔버 페스티벌 개막 리셉션장, 그리고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개막 연주회를 끝내고 만났을 때 그는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 본인의 연주는 물론이고, 함께한 동료 음악인, 그리고 객석의 청중 반응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다. 개막 연주회장에서 만난 부산시향 이일세 첼로 수석은 “음악을 음‘학(學)'으로 배운 우리와 달리 음'악(樂)'의 모습을 보여준 무대였다”고 촌평했다.

'트리오 바클레이' 앙상블 멤버들. 왼쪽부터 첼리스트 요나 김, 바이올리니스트 데니스 김, 피아니스트 션 케너드. 김은영 선임기자 key66@ '트리오 바클레이' 앙상블 멤버들. 왼쪽부터 첼리스트 요나 김, 바이올리니스트 데니스 김, 피아니스트 션 케너드. 김은영 선임기자 key66@

■첼로 거장 야노스 슈타커와의 만남

요나 김의 음악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부산대 음악관에서 만났을 때 요나는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선교사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부터 해외를 돌아다녔어요. 첼로는 파블로 카잘스의 VHS 테이프를 보면서 독학으로 배웠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이 없었던 게 저한테 유리했던 것 같습니다. 첼로가 어려운 건지 전혀 몰랐으니까요. 일곱 살 때 운 좋게 줄리아드 오디션에 합격해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요나는 “운이 좋아서”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건 스승이었다. 줄리아드에 입학한 뒤 슈타커와 편지를 주고받다가 아홉 살이 될 무렵 그의 마스터클래스에 초청받아 갔다. 그날 이후 아예 블루밍턴 슈타커 자택에서 1년여를 기거하며 첼로를 배우게 된다. 냉정하면서도 절제미 넘치는 깔끔한 연주로 정평이 난 슈타커였기에 그의 집에 살면서 개인지도를 받는 게 힘들지는 않았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슈타커도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서 저를 손자처럼 사랑해 주셨어요. 연주도 냉정한 편인데다 성격도 까칠하신 걸로 유명했지만 저한테는 아주 따뜻하셨으니까요. 그때 해 주신 말씀이 그 후 20년, 30년 동안 저한테 매우 큰 가르침이 되었어요. ‘Create excitement. Don't get excited.’ 연주할 땐 청중을 흥분시켜야지 연주자 본인이 절대로 흥분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말씀을 곧잘 하셨거든요.”

이번 연주는 확실히 그 말처럼 되었다. 사실 요나와 함께 3중주를 결성한 ‘트리오 바클레이’ 앙상블 멤버 바이올리니스트 데니스 김(전 서울시향 악장·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교수·퍼시픽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과 피아니스트 션 케너드(스테슨대 교수·스타인웨인 아티스트)의 에너지도 남달랐다. 이들과 6중주, 8중주를 함께한 미셸 김(미국 메네스음대 교수·뉴욕필하모닉 부악장)은 그들의 음악적 텐션을 별도로 언급할 정도였다. 션은 나이 차이는 있어도 커티스음악원에서 함께 수학했다. 커티스음악원에 들어간 것도 슈타커의 제안 덕분이다. 집에서 연습만 하지 말고 다양한 선생에게 배우면서 새로운 음악 세계를 경험해 보라고 보낸 거였다.

3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열린 '부산문화회관 챔버 페스티벌' 개막 연주회가 끝난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연주자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 3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열린 '부산문화회관 챔버 페스티벌' 개막 연주회가 끝난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연주자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

음악의 본질은 아름다운 감동

요나 인터뷰에 앞서 그가 운영 중인 유튜브(jonahkimcello)에 접속해 몇 곡을 들었다. 그의 카리스마와 음악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캐시미어 스웨터의 포근함이 느껴지는 따뜻함”이라고 표현한 한 음악평처럼 화려한 사운드와 프레이징의 우아한 결합이 놀라웠다. 슈타커 스승의 제자인 만큼 냉정함과 절제미를 기대했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오히려 굉장히 자유롭고, 창의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더니 요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 입장에선 오랫동안 연주를 하면서 테크닉적으로 절제하는 연주를 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음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음악은 진짜 속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말도 없고, 단어도 없고, 문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소리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세상에서 마술에 가장 가까운 게 아닌가 싶었어요. 공기에 진동을 보내는 거잖아요. 그게 몸을 통하고, 마음을 통하면서 듣는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놀라웠지요. 그게 음악의 진정한 힘이 아닌가 싶었어요. 아마 그때부터 제 연주 스타일도 조금씩 바뀐 것 같아요. 5~6년쯤 됐나? 제가 결혼하고, 딸이 태어나고 한 시점과도 거의 맞닿아 있어요.”

음악이 그의 삶을 바꾼 것이기도 했다. 음악을 들으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감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현직 발레 댄서인 아내와 다섯 살 딸과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면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나는 음악을, 첼로를 “아직도” 굉장히 사랑한다고 했다. 비유적인 표현이었지만, 시간 날 때 들르는 영화관과 달리 음악회는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자기가 얼마나 잘하는지 기량을 뽐내는 것보다 맛있는 것을 같이 나눠 먹자는 느낌으로 음악을 하게 됐다고도 했다.

첼리스트 요나 김. 요나 김 제공. 첼리스트 요나 김. 요나 김 제공.

코로나 팬데믹 기간 유튜브가 준 새 기회

코로나19 와중에 본격화한 유튜브 활동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게 또 요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단절됐을 때 친구들 요청이 있었어요. 하나둘씩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걸 잘 봐주셨어요. 그때 레코딩 회사에서 연락도 왔고요. 특히 슈타커 선생님의 명반으로 손꼽히는 곡을 녹음했던 그 레이블(델로스)에서요. ‘코다이’(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다시 녹음해 달라고요. 그래서 2021년 코다이를 녹음하게 됐어요. 코다이는 쉽지 않은 곡이지만 슈타커 선생님이 살아계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겁니다.”

요나는 지금까지 두 개의 솔로 음반과 여러 개의 합주 음반을 발매했다. 첼로 연주 외에도 직접 곡도 만든다. 첼로가 안 들어가는 곡도 있지만, 첼로를 위해서 많이 쓰고 싶단다. 이전에는 가명을 사용했지만, 이젠 정식으로 곡 위촉도 받는 등 연주자와 작곡가를 병행하고 있다. 레코딩도 기회 닿을 때마다 할 생각이다. 당장은 ‘트리오 바클레이’ 앙상블 녹음 계획이 잡혀 있다. 두 군데 레이블에서 요청이 왔는데 최종 낙점은 하지 않고 있다. 4일 부산에서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와 드보르자크 피아노 3중주는 음반에 들어갈 곡이다. 할 수 있는 만큼 라이브로 퍼포먼스를 하고 녹음실로 들어가 녹음하려는 계획이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의 음악관을 잘 드러내는 것 같아서 인용해 본다.

“음악을 하는 것은 직업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거의 사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음악을 하는 좋은 이유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그런 것을 원해서 음악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진짜 음악을 사랑하고, 이 음악이 다른 사람의 삶을 더 아름답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살 수 있다면 음악을 하라고 권하고 싶고요, 그런 이유로 음악을 하면 좋겠어요. 저 역시 그렇게 음악을 하고 있고요.”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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