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
영화평론가
‘천만 감독’ 윤제균 8번째 영화 ‘영웅’
뮤지컬 영화로 기존 작품과 차별화
안중근 어머니 등 여성 캐릭터 부각
현장 라이브 녹음으로 생생한 전달
새해,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는 어떤 작품일까.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가서 기분 좋게 자리를 뜰 수 있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작품 말이다. ‘아바타’가 인기라지만 3시간가량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해서 가족과 볼 만한 작품에서 제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을 잘 만드는 감독을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천만 명이 선택한 영화 ‘해운대’와 ‘국제시장’을 통해 국민들의 보편적인 감성을 끌어낸 감독으로,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도 극장으로 오게 만든 저력이 있지 않던가.
윤제균 감독의 8번째 영화 ‘영웅’이 개봉했다. 전작 ‘국제시장’에서도 그랬듯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1909년 10월부터 죽음을 맞기까지 마지막 1년을 그린다. 그것도 뮤지컬 영화다. 한국에서 인기 없는 장르가 뮤지컬 영화인 걸 감안한다면 ‘천만 감독’이 선택한 ‘영웅’은 기획 자체가 모험 같다. 일례로 작년 염정아·류승룡 배우의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도 흥미를 끌 법한 요소들을 지녔음에도 신파와 대중음악의 결합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영웅’은 기존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뮤지컬 영화로 차별점을 둔다. ‘영웅’은 2010년 초연을 올린 뒤 뉴욕과 하얼빈 등에서도 공연되는 등 가장 대중적인 국내 대표 창작뮤지컬로 유명한 작품이다. 무대에서 보던 그 작품을 영화로, 그것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역사의 한 대목을 다룬다는 점은 사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뻔한 이야기를 빤하지 않게 그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먼저 안중근의 일대기에 음악을 입혀 감동과 몰입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오프닝은 드넓은 설원 위를 걷던 안중근이 자작나무 숲에 이르러 동지들과 네 번째 손가락을 잘라내는 ‘단지동맹’을 맺는 데서 시작한다. 이 시작은 결연함과 비장미로 가득 차 있지만 ‘그날을 기약하며’를 부르는 안중근의 목소리는 묵직한 이야기를 한 톤 가볍게 접근하게 만든다. 또한 영화는 안중근 의사를 영웅으로 미화하기보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처단이 동양평화론과 관계있음을 밝히고, 그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동지들에 주목하게 만들면서 지금까지의 역사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간다.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윤제균 감독의 전작들에서 남성 히어로(황정민, 설경구)들이 영화를 지탱했다면 이번 영화는 여성 캐릭터가 눈에 띤다는 점이다. 조선의 궁녀였다가 스파이가 된 ‘설희’와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독립운동가의 여동생 ‘진주’의 서사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소소한 웃음을 안기다가 안중근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진주, 아들의 죽음이 조국을 위한 희생임을 알리는 어머니의 슬픔, 남편의 사형을 면하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아내까지. 그녀들은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음에도 임팩트 있는 장면들로 관객들의 뇌리에 남는다. 또한 자신들의 심정을 노래하는 부분은 감동과 더불어 뮤지컬 영화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모두 함께 부르는 ‘누가 죄인인가’와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불러주는 어머니의 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그 목소리만으로도 심금을 울린다. 국내 최초 현장 라이브 녹음 방식이라고 알려진 것처럼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모든 넘버를 소화했고, 이는 생생하고 진정성 있게 전달된다. 그중 뮤지컬 무대에서 오랫동안 안중근 역을 소화해온 배우 정성화는 스크린을 통해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그의 연기와 노래에는 힘이 있고 깊이감이 더해져 마치 뮤지컬 무대를 연상시키며 영화를 안정적으로 지탱하고 있다. 새해, 가족들과 함께 보기 적당한 영화 한 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