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00. 향토적 서정성 지닌 서양화, 이림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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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림(1917~1983)은 경남 마산 출신의 화가로, 한의사 가문의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정규이며, 이림이라는 이름은 작가 활동을 시작하며 사용했다. 그림에 뜻이 있었으나 의사 가문에서 의학이 아닌 미술을 전공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이림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1936년 서울로 가서 조선미술원에서 서양화가 박광진에게 유화를 배웠다. 조선미술원은 1936년 도쿄미술학교 출신 서양화가 박광진과 조각가 김복진이 창설한 미술학교 형태의 연구소이다. 박광진 화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림은 이듬해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했으나, 중도 자최한 뒤 마산으로 돌아왔다.

이림은 1949년 부산시 공회당에서 열린 30대 청년 작가의 그룹전인 제1회 경남미술연구회 작품전에 8점을 출품했다. ‘명태어’ ‘왕게’ ‘황소’ 등 작품으로 농어촌의 일상적 풀경과 정물을 주로 표현했다.

1950년부터 마산남중, 마산고 등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하며, 1952년부터 1959년까지 매년 개인전을 개최했다. 부산의 미국문화관에서 가진 경남미술연구회의 개칭 혁토사(爀土社), 흑마회(黑馬會) 등 그룹전에 참가했다. 여기서 작가는 향토적 자연주의 소재의 작품을 발표했다.

1959년 서울로 이주한 작가는 뒤늦게 국전에 참가했고 몇 차례 특선을 거쳐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국전 참가로 이림은 미술계의 새로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 1960년 무렵부터는 구상이 아닌 추상 작업으로 변화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한편 1962년부터 참가한 신기회전(新紀會展), 1978년부터 창립회원으로 참여한 상형전(象刑展)에서의 작품은 여전히 향토적 소재 또는 자연적 화면을 특징으로 한 구상화를 병행했다. 추상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구상화도 제작하는 양상을 보였다.

1944년에 제작된 ‘해녀’는 작가가 마산에 거주할 당시에 그린 작품이다. 세로로 긴 화면에 바다를 배경으로 두 명의 해녀가 앉아 아이를 돌보고 있다. 그 뒤의 두 명은 작업 채비를 마치고 파도가 치는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소재 측면에서 해녀가 있는 향토적이고 자연적인 한 장면을 묘사하기 위한 작품으로 보이나, 표현 방식에서는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을 연상시키는 간략화한 얼굴 모습과 자세, 화면에 따라 인위적으로 길게 배치된 인물의 좌상과 입상의 구도, 또한 세잔을 연상시키는 채색법을 보여준다. 서양과 일본의 영향을 받은 서양화법을 익히고 훈련한 가운데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김진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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