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첫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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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영화 ‘러브레터’ 한 장면. 영화 ‘러브레터’ 한 장면.

연인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 “오겡끼데스까”.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 명대사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요.” 설원에 울려 퍼지던 메아리는 애틋하다 못해 미처 말하지 못했거나 다하지 못한 사랑의 비의를 온축하고 있다. 히로코는 세상을 떠난 연인 후지이 이츠키의 옛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뜻밖에도 답신을 받는다. 동명의 여성 후지이 이츠키가 보낸 편지다. 같은 이름을 지닌 두 사람은 고교 동창이었다. 학창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첫사랑의 실체가 드러난다. 후지이 이츠키의 첫사랑은 바로 후지이 이츠키였다. 히로코와 후지이 이츠키 역은 같은 배우가 1인 2역을 맡았다. 히로코는 후지이 이츠키의 현신이었을까. 이 영화는 첫사랑의 아련한 판타지다.

존 스튜어트 밀의 러브스토리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그는 24세에 깊고 그윽한 지혜의 소유자 헤리엇 테일러를 만난다. 이미 유부녀였다. 서로 연모하며 20년 이상 마음을 나누었다. 무엇보다 함께 사유하며 글을 다듬었다. 저작 대부분이 테일러와의 공동작업이라 공언했을 정도다. 그들은 테일러의 남편 사후에야 결혼했다. 밀의 나이 45세였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7년이 지났을 무렵 테일러가 여행 도중에 느닷없이 사망했다. 〈자유론〉은 테일러의 섬세한 손길을 거치지 못하고 출판했다. 그러한 글은 보잘것없었노라 탄식했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아련하다. ‘처음’이라는 말이 환기하는 설렘, 실패로 귀결되기 마련인 서투름을 고스란히 품은 청춘의 나날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은 삶의 결핍에 대한 자기 확신이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치열한 관계를 요구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가.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위해 삶의 현장에서 고투하거나 인고의 시간을 마다하지 않는다. 희생과 헌신을 동반한 밀과 테일러의 사랑은 그들을 삶과 학문의 치열성으로 이끌지 않았던가. 사랑도 삶도 자기 선택과 확신이 중요한 셈이다.

사랑이나 삶의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가 추구하는 사랑과 삶의 가치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삶과 사랑을 대다수가 용인하는 방식과 기준에 따르도록 강제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황폐할 것인가. 사랑이 소유양식이 아니라 생산적인 능동성에 기초한 존재양식으로 경험될 때, 우리의 삶이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고 자발성에 기초할 때, 마침내 사랑과 삶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his own mode)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자유론〉의 한 구절이다. 설렘 속에서 새해 새날들을 맞이한다. 첫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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